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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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특집1



옆집과 우리집은 낮은 담장 하나로 이웃하고 있다.
무르팍 높이 만큼이나 될까 이 낮은 담장이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이사짐을 풀고 난 후 어느 날 코뿔소 같은 옆집 여자를 보았다.
어찌나 첫인상이 무섭고 안 좋던지 당장 담장을 높여야겠다 했건만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낮은 담장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갈색머리 여자와 그 세상을 살아 내야만 하는 검은 머리 여자가 나란히 살고 있다.
20여년전 마주했던 그녀, 거칠고 퉁명스러운 이웃집 그 여자를 대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친절한 이웃을 고대했건만 그 둔탁한 몸에 신경질적이고 괴팍하기까지 한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번은 우편물이 그 집 우체통으로 잘못 배달되었는지 그 낮은 담장 너머에서 휙 하고 던져 버리는 그녀를 보았다.
어찌 해야 할지 갑갑한 날도 많았다.
그러나 전해주는 방법이 형편이 없었던 것뿐이지 결과적으로 그 편지를 임자에게 잘 전해주긴 한 것이었다.
중요한 우편물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잊고 살던 진실 한가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흐름 뒤에는 분명 변화되어 달라진 결과물이 함께 온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피부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이웃집 여자 린다와 커피 한잔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녀의 집에서 말이다.
그때도 그녀는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넘어오란 손짓을 했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함부로 반가워할 수도 없었다.
간단하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눈치껏 하는 어림짐작의 대화였지만 ‘Are you OK`’이를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걱정 어린 눈빛이 너무도 생소했다.
혹시나 전날밤 속상한 일이 있어 식탁 앞에 앉아 한없이 울고 있던 나를 본 것은 아닌지 싶었다.
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엌 창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는 같은 언어로 그러나 제 각각의 의미로 서로를 알아 갔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게는 바디 랭귀지가 최상의 소통 이였다.
그리고 결국 두꺼운 갑옷에 무서운 뿔을 달고 있는 코뿔소를 닮은 그녀도 사실은 말도 안 되게 유순한 초식동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는 중천에 떠 있건만 오늘도 여름이라 하기에는 서늘하다.
마당 귀퉁이에 일궈 놓은 한줌 텃밭에서 귀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깻잎을 보러 나갔다. 담장 넘어 이웃집 여자 린다와 눈이 마주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넘어오란 손짓을 한다. 아마도 새로 시작한 퍼즐을 끝냈나 보다.
린다는 퍼즐의 여왕이다.
그 두툼한 손가락으로 작은 퍼즐 조각을 잘도 집어 맞춘다.
얼마전부터 1000피스짜리 퍼즐을 시작한다 하더니 거의 끝내고 있었다.
그 의기양양한 눈빛에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굿 잡’`을 쏴 주었다.
햇살 찬란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그 바다를 끼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모형 같은 형형색색의 집들이 끼워 맞춘 듯이 서있는 이탈리아 포지타노(POSITANO)의 풍경이 였다.
아름다웠다.
어쩌면 린다가 한 순간이라도 머물고 싶었던 곳은 아닐까 마음이 아련하다.
가장자리부터 메꿔 나가는 것이 분명 쉬울 텐데 린다는 그녀의 무지한 뚝심처럼 가운데 그림 조각부터 끼웠다 빼기를 반복하며 인상을 쓰곤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느 명상가의 하루처럼 한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퍼즐을 완성해낸다.

그녀 나이 열 일곱, 철부지 사랑 놀음에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되고 동시에 맞은 배신과 곧 이은 아이의 죽음 그리고 끝내 맞은 파경. 두려움에 눈물조차 여유가 없었다.
그 끝도 없는 나락의 바닥에서 그녀는 또 다른 사내의 품에 의지하였지만 그곳에는 폭력과 보라 빛 멍 자국만 선명한 더욱 지독한 절망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의 저주가 분명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의 호흡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이 깊고 습한, 가슴 속에 뚫린 동굴에서만 허락된 신음 이였다.
단추가 잘못 꿰여진 탓 이였을까 계속된 불행과 상처 증오와 후회 그리고 그로 인한 총체적인 결핍이 그녀의 삶을 파산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린다는 세상의 문을 닫은 채 살게 되었다.
충동적 이였으며 무지했던 그러므로 일그러진 삶의 파편들, 그 망각되지 못한 상처들의 굴레에 갇혀 살아야 했던 이웃집 여자 린다.
제대로 천천히 어른이 되었더라면 그녀의 가슴에는 어쩌면 옹달샘이,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깊고 습한 동굴의 어둠을 갑옷으로 입고 살지는 않았을 것을, 연민의 감정이 물결친다.
그리고 그녀의 담장 너머에 살고 있는 내게도 새로운 이곳 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영어라는 언어가 참 단순치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나 ‘`Idom’이라 하는 관용어구(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생성하는 어구)의 사용이 많은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귀가 열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문제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생활의 모든 면을 책으로 배워온 나에게 이민 생활이라는 것은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영어공부와 같았다.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다 보니 하루하루 생채기를 달고 산다.
가끔씩은 한국 지하철에서 보았던 방글라데시인들이 생각난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아닌 그저 언어가 서투르고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일 뿐이다.

그러한 날 중의 하루였다.
아들녀석의 중학교(Intermediate)졸업식과 딸아이의 초등학교(Primary) 졸업식이 한 날 한시에 있다고 한다.
난감한 일이었다.
이민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기도 했지만 부탁할 사람 하나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이것이 바로 린다의 이웃집에 사는 검은 머리 그녀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들녀석을 학교 입구에 내려주고` ‘바삐 오겠 노라’` 한 마디 남기고 딸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눈물 한 모금이 찔끔했다.
평탄하게 살아왔던 나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담장을 넘듯 건너온 지금의 이 시간과 상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리가 파래진다.
초등학교의 졸업식 이였음에도 더디 끝났다.
서둘러 아들녀석의 학교로 와보니 졸업식은 끝나고 여기저기 사진에 찍히는 기쁨들만 가득했다.
가슴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들을 찾기에 마음이 바빠졌다.
그때 낯선 모습들이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저쪽 편에서 원피스를 입은 뚱땡이 린다가, 코뿔소 린다가 내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몇일 전 나의 넉두리를 마음으로 듣고 있었나 보다.
택시를 불러 타고 왔단다.
부모한테조차 외면당했던 린다, 그녀의 어머니는 살던 집을 린다에게 미안함으로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거의 20여년을 정부주택에서 생활 보호대상자로만 살아왔던 린다가 낮은 담장이 있는 그 집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차고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자동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곳에서 그녀에게 차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 린다가 택시를 타고 그녀의 동굴에서 나온 것이다.
처음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병원을 갈 일이 생겼었다.
급한 마음에 이웃집 린다에게 도움을 청하였었지만 짜증나는 말투와 마지 못해 준 Yello Book(전화번호부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러 했던 그녀가 오늘 우리 아이를 위해 택시를 타고 원피스를 입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지난 일 년간의 그 시간은 분명 무심히 지나가지는 않은 듯하다.
아침나절의 속상함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한 기쁨과 감동이었다.
아들 녀석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컸으나 두 아이들의 졸업식을 잘 마쳤으니 당연히 감사한 일 이였다.
그리고 분명 거기에는 더 깊은 환희도 있었다.
어느 날 검은 머리의 동양 여자가 이사를 왔는데 창문 너머의 그 여자는 매일 저녁마다 울고 있었다고, 어디에도 쓸모 없는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도움을 청하기도 한 그 동양여자가 처음에는 귀찮고 이상하였었다고 하지만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훗날 린다는 말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연민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 또한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나 보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동양인 여자가 혼자 아이 둘을 열심히 키우는 모습이 창문 너머 그녀에게는 결핍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결핍이 오히려 보라 빛 멍으로 타버린 그 여자, 린다의 무겁고도 공허한 결핍을 채우는 첫 걸음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이러니컬한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한국에서라면 근처에도 안 갔을 그런 여자가 이제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버렸는데 무슨 상관이랴, 각자의 결핍이 서로를 채워 살게 한 것 그것이면 충분한 것을.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갈색머리 여자와 이 곳 뉴질랜드에서 험난했던 세상살이를 훈장으로 여기는 검은머리 여자가 도란도란 함께 늙어가고 있다.
그 나지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저녁에 부는 바람이 좋다.
데크에 나와 보니 옆집 창문 너머로 고개 숙인 린다가 보인다.
그녀는 오늘도 퍼즐을 맞추고 있다.



My neighbor’s house and mine are separated by a low fence.
This low fence, at about knee height, protects each of us.
One day after I unpacked my belongings, I saw the rhinoceros-like woman who was my neighbor.
My first impression was so scary and bad I wanted to raise the fence immediately, but after many years, the low fence is still there.
And so the brown-haired woman who lives with her back to the world and a black-haired woman who has to live with it live side by side.
It’s been a struggle to deal with the woman I first met 20 years ago; this harsh, blunt neighbor.
I had wished for a friendly neighbor, but instead it was never easy to understand this prickly and eccentric heavyset woman.
Once I saw her flinging a letter over the low fence, perhaps because the letter had been wrongly delivered to her post box.
There were many days when I was not sure what to do. But at the end of the day, the letter was delivered to the right person, even if the method of delivery was lousy. It was an important piece of mail, and I was grateful.
As we lived like this for a little over a year, I was reminded of a truth I had forgotten.
I realized that time never stops flowing, and with that flow comes something that has changed and is different.
Just like our skin, which cannot resist the flow of time.
One day, I happened to end up having coffee with my neighbor Linda.
At her house, too.
Even then, she beckoned me over rudely with her fingers.
At this sudden occurrence, I didn’t know what was going on so couldn’t even welcome the situation.
It was a short conversation, just a few words about herself.
It was a cautious and halting conversation, of course, but the look of concern in her eyes as she asked, “Are you OK?” several times was so familiar.
I wondered if she had seen me crying at the kitchen table the night before after something upsetting.
Because, if one were to be interested, we could easily peer in through each other’s kitchen windows.
Since then, we’ve gotten to know each other in the same language but in our own different ways.
For a long time, body language was the best form of communication for us.
I eventually learned that this rhino-like woman, with her thick armor and fearsome horn, was actually a deceptively docile herbivore.
The sun was high in the sky but still too cool for summer.
I went out to check on the patch of sesame leaves growing in the corner of the yard.
I looked over the fence and made eye contact with my neighbor, Linda.
As if she’s been waiting for me, she snaps her fingers again, beckoning me to come over.
It seems she’s finished a new puzzle she’s started.
Linda is the queen of puzzles.
Her chunky fingers deftly fit the tiny puzzle pieces together.
She just started a 1,000-piece puzzle and is almost finished.
At her triumphant look, I shoot her a “good job” by giving her a thumbs-up.
The picture was of Positano, Italy, with its sun-dappled, emerald waters and colorful, model-like houses perched along the ridge that framed the sea.
It was beautiful.
I wonder faintly if this is where Linda would have wanted to stay, even for a moment.
It would have been easier to fill in the edges, but Linda, in her set ways, starts with the center piece of the picture, inserting and removing it repeatedly.
Even with this method, she sits in one place for a long time, like she is spending the day meditating, and completes the puzzle.
At the age of 17, she fell in love and became an adult without even graduating from high school.
Becoming a mother at the same time as being betrayed, the death of her child and the bankruptcy that followed.
So much fear that there were not even tears.
At the bottom of that never-ending spiral, she leaned into the arms of another man, only to find violence, purple bruises and even worse despair waiting for her.
It was surely a curse from the gods.
In this world, she was not allowed to breathe.
The only thing permitted to her was a moan that emanated from the caverns of her chest, deep and damp as pitch black.
Perhaps it was because of the first wrongly threaded button, but the constant misery, hurt, hatred, regret and utter loss resulting from these were bankrupting this woman of her life.
And so Linda lived with the door to the world closed.
My neighbor Linda, whose shattered fragments of her life that resulted from impulsiveness and ignorance, left her trapped in the shackles of her unforgotten wounds.
Compassion laps at me, thinking if she had grown up slowly as she should have, perhaps a spring would have bubbled up in her heart or at least she would not have had to live with the darkness of a deep, damp cave as her armor.
As for me, living on the other side of her fence, life in this new place was not easy.
I feel deeply in my bones how English is not a simple language.
Especially here in New Zealand, where idiomatic phrases (two or more words combined to create a new meaning) are commonplace, I needed a lot of time for my ears to open to the language.
It wasn’t just the language.
For someone who had learned about every aspect of life here from books, learning to live life as an immigrant felt comparable to learning English from scratch.
With this constant physical and emotional struggle, I live every day with wounds.
Sometimes I think of the Bangladeshi people I saw on the subway in Korea.
Here, I am not a graduate of a prestigious university but just a foreigner who cannot speak well with a different skin color.
It was during one of these such days that my son’s intermediate (middle school) graduation and my daughter’s primary (elementary school) graduation were on the same day at the same time.
It was a difficult situation.
This was the new world that Linda’s black-haired neighbor, who had just immigrated to the country and had no one to turn to for help, lived in.
Faced with no choice, I dropped my son off at the school gate, said, “I’ll hurry back” and headed for my daughter’s school.
A single tear stung my eye.
Leaving behind my easeful life, I had crossed over the fence, my hair turning gray, trying to fathom the meaning of these times and circumstances.
Even though it was just an elementary school graduation day, it was slow.
I rushed back to my son’s school, but the graduation ceremony was over, and there were nothing but pockets of people joyfully getting their pictures taken.
My heart dropped to the floor.
My mind raced to find my son.
At that moment, I saw some strangers beckoning me.
In the distance, chubby Linda in a dress, Linda the rhinoceros, was walking toward me, holding my son’s hand.
She must have heard in her heart my anxious sorrows from the last few days.
She had called a taxi to come here.
Rejected by her own parents, in the end her mother had given the house to Linda as an apologetic gift and passed away.
After nearly 20 years of living on welfare in government housing, Linda had become the owner of the house with a low fence.
But there was no car in her garage.
In this country where it’s hard to even imagine life without a car, she had no need for one.
This Linda came out of her cave in a taxi.
One day, not long after we first moved in, I needed to go to the doctor.
In my desperation, I asked my neighbor Linda for help, but all I got was an irritated tone of voice and a reluctantly handed-over Yellow Book (a phone directory).
Today, she’s here in a taxi wearing a dress for my child.
The past year has certainly not gone by unnoticed.
It was enough joy and emotion to make up for my morning’s sadness.
I was still feeling sorry for my son, but I was grateful that both of my children had made it through their graduation ceremonies.
And certainly there was a deeper joy there, too.
Linda later told me that one day, a black-haired Asian woman moved in, and the woman in the window was crying every evening and would sometimes try to talk or ask her for help even though she was useless, and although she found the Asian woman annoying and strange at first, she began to worry about what was going on.
My compassion for her was not unique.
I must have been the object of her sympathy and compassion as well.
The sight of an Asian woman who didn’t even speak proper English, struggling to raise two children alone, must have seemed to her through the window as a sign of deficiency.
It was an ironic evening when I wondered if my deficiency was the first step in filling the heavy and empty deficiency of Linda, the woman with the purple bruises.
A woman who I would have never gone near me in Korea is now my neighbor and friend, but it doesn’t matter because our deficiencies have fulfilled each other’s lives, and that is enough.
The brown-haired woman who lived with her back to the world and the black-haired woman who wears her hard life here in New Zealand as a badge of honor are growing old together.
With that low fence in between them.
The evening breeze is nice.
When I step out onto the deck, I see Linda leaning over the window next door.
She is working on a puzzle agai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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