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외국인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독립운동가 김태연(1891∼1921년) 지사의 유해가 그의 사후 근 100년 만에 조국 대한민국의 품에 돌아왔다. 4월 9일 인천국제공항 귀빈주차장에서 김태연 지사 등 세 분의 애국지사 유해 봉영식이 열렸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며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3월 28일 오전 상하이시 창닝(長寧)구에 있는 외국인 공동묘지인 만국공묘(萬國公墓)에서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김 지사의 무덤에서 유해를 꺼내는 파묘(破墓) 행사가 진행됐다. 김 지사의 외손자인 조관길 씨와 국가보훈처·주 상하이 총영사관 등 정부 관계자, 상하이 한인사회 대표 등 참석자들은 파묘에 앞서 먼저 ‘TAI Y KIM’이라는 영문 이름이 적힌 묘비에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김 지사는 3·1 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5월 상하이로 망명해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만 30세이던 1921년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아내와 네 딸을 고향에 남겨두고 상하이로 망명했던 그가 조국을 떠난 지 꼭 100년 만에 귀국하게 된 것이다. 많은 한인이 독립운동 거점인 상하이로 몰려들던 시절 김 지사는 몽양 여운형 등과 함께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을 조직해 한인들의 자치 활동을 이끌었다.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20년에는 구국모험단 참모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 폭탄 등 무기 구입, 일본 관청 파괴 및 일본 관리 암살 등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21년 상하이 한인 자녀들 교육 기관인 인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동포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애국 활동을 벌였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김 지사와 함께 만국공묘에 묻혔던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과 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윤현진·오영선 지사 등의 유해가 한국으로 옮겨졌지만 김 지사가 이곳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확인이 됐다. 후손들 역시 김 지사가 이곳 만국공묘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수년 전 우리 정부의 통보를 받고서야 알 수 있었다. 김 지사가 숨진 직후 당초 임시정부 청사에서 멀지 않은 상하이 중심의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가 수차례 이장을 거쳐 만국공묘로 옮겨졌고, 묘비에 아무런 정보 없이 ‘TAI Y KIM’이라는 영어 이름만 적혀 있다 보니 확인이 쉽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유족의 동의를 얻어 2015년부터 수년째 물밑에서 중국 정부를 꾸준히 설득한 끝에 마침내 김 지사의 유해를 봉환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