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의 멍에를 뒤집어쓴 이른바 B·C급 전범과 유족들의 모임인 동진회(同進會)가 ‘환갑’을 맞았다.
한때 사형수 신분이었던 이학래(90·재 일본 동진회 회장) 씨와, 자신의 아버지가 처형된 강도원(77·재 한국 동진회 회장) 씨 등은 4월 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결성 60주년을 기념하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 입법을 요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긴 세월 동진회를 지원해온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게이센조가쿠인(惠泉女學園)대 명예교수 등 일본 시민단체, 학계 인사 100여 명이 자리했다. 후지타 유키히사(藤田幸久) 참의원(민주당)과 이케우치 사오리(池內沙織) 중의원(공산당) 등 국회의원 6명도 참석해 입법을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올해 32살의 정치 신인인 이케우치 의원은 “주오(中央)대 재학 시절 (일본 내 군위안부 연구의 선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의 강의를 들은 것을 계기로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며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민주당 가미모토 미에코(神本美惠子) 참의원은 3월 28일에 90세 생일을 맞이했던 이학래 회장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며 건강을 기원했다.
‘한국인 B·C급 전범’은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투입했던 조선인 중 일본 패전 후 열린 연합군의 군사재판에서 포로 학대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148명을 말한다.
일본은 3천200여 명의 조선인들을 군속 신분으로 허위 모집한 후 포로 감시원으로 투입했고, B·C급 전범으로 지목된 한국인 148명 중 23명이 처형됐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긴 세월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했고, 전후 일본 정부의 국적 이탈 조치에 따라 일본 국적마저 상실했다. 동진회에 따르면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 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이학래 회장은 일제강점기에 포로감시원으로 태국에 끌려갔다가 전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8개월간 사형수로 수용돼 있었다. 나중에 20년형으로 감형받았고 모두 11년가량 구금돼 있다가 1956년 10월 가석방됐다. 식민지 조선인이었기에 일본인으로 전쟁에 동원됐음에도 종전 후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한국인 전범이 일본의 강요에 의한 전쟁 피해자임을 인정받으려고 1991년 제소, 오랜 기간 법정에서 싸웠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그나마 1999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인 전범이 ‘심각하고 막대한 희생, 손해를 봤다’며 문제를 해결할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판시했고 이 회장 등은 시민단체와 힘을 모아 명예 회복과 피해 배상을 촉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