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노르웨이와의 관계는 노르웨이가 6·25 전쟁 때 623명의 외과 야전 의무대를 파견해 우리를 도와준 것으로 시작된다. 노르웨이 육군은 전쟁이 한창인 1951년 4월에 참전해 미8군 사령부 직할대로서 현재 의정부 성모병원 인근에 이동 외과 병원을 6개월간 운영했다. 부상한 아군과 전쟁 피해 민간인 등을 치료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북진하는 연합군을 따라 두 차례 이동, 1952년 7월∼1954년 11월 동두천시 신천 변에 주둔했다. 당시 유물은 동두천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병원에는 노르웨이 의사와 간호사 등 623명과 한국인 60여 명이 근무했으며 적군을 포함해 9만여 명을 치료했다. 정전협정 이후 이 병원 근무자들은 ‘노르웨이 한국재단’을 설립, 전쟁고아들을 본국으로 입양했다. 휴전 후 노르웨이 의료진이 서울에 세우고 간 병원이 현재 국립의료원의 전신이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2013년 7월 25일 금오동 상록근린공원에서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6·25 전쟁 때 노르웨이 육군 이동 외과 병원 주둔을 기념하는 비석이다.노르웨이에는 2014년 현재 692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는 440명이고 일반 체류자는 252명이다. 한인회는 1972년에 설립됐다. 1994년 이후 한국에서의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한인 사회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곳의 한인들은 관광 알선업이나 관광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며 기반을 다졌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석유·가스 수출국인 노르웨이는 전통적으로 조선·해운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의 지식, 장비,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조선국인 한국과 노르웨이가 조선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켜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굴지의 조선 업체들이 노르웨이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근면하고 성실한 한인 입양인 모국 방문 늘어
‘노르웨이 한국인 1호’인 이철호 씨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라면왕’으로 불리는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미스터 리’라는 브랜드로 한국 라면을 소개해 노르웨이인들을 사로잡았다. 이 씨는 광고와 방송 등에 직접 출연하면서 지명도를 높혀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유명인이 됐다. 현지 식품회사에 판매권을 넘긴 ‘미스터 리’는 라면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며 여전히 90%대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