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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통신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고려인의 슬픔을 달래준 재외동포 신문 고려일보의 창간 90주년 기념식이 10월 12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한국을 대표해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의 장윤석 의원과 총리급인 투그잔노프 예랄르 카자흐 민족회의 사무국 의장, 중앙아시아 고려인 대표들이 참석해 고려일보의 지난 노고를 격려하고 건승을 기원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이날 장윤석 의원이 대독한 축전을 통해 “한민족 정체성 및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한 고려일보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도 예랄르 의장을 통해 “카자흐 발전에 이바지한 고려인 사회의 중심인 고려일보가 앞으로도 더 많은 성공을 이뤄가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진행된 기념식에서는 카자흐 고려극장 단원들이 옛소련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고달팠던 삶을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923년 고국의 소식을 전하고 동포들의 삶을 알리고자 연해주에서 ‘선봉’이라는 이름으로 첫걸음을 뗀 고려일보는 1937년 옛소련 시절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로 옮겼다.


초창기 고려일보는 당시 일본의 침략전쟁을 고발하고 애국심을 고취해 항일투쟁으로 궐기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스탈린은 연해주 거주 한인들을 일본의 스파이로 규정하고 1937년 조선인들을 모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신문의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총살됐으나 일부 직원들은 출판기계와 활자판을 카자흐스탄으로 가져와 신문을 재발행했다.


소련 당국의 강압으로 1년간 폐간됐던 이 신문은 1938년 ‘레닌의 기치’라는 공산당 기관지로 복간됐으며 사회주의 이념 확산을 노린 소련 당국의 지원 속에 한때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타슈켄트, 크질오르다, 두샨베, 푸룬제 등지에 지사를 두고 주 6회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경영에 치명타를 입게된 ‘레닌의 기치’는 한글을 아는 동포마저 급감하자 1991년 신문의 명칭을 고려일보로 바꾸고 주간으로 변경하게 됐다.


한때 중앙아시아 각지에 특파원을 두고 발행 부수 4만 부를 기록하며 유력일간지로 성장한 고려일보는 지역의 재외동포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알리고자 애써왔다.


소련 공산당 집권 시절에는 공산당이 허용하는 뉴스만 게재할 수 있었지만 고려일보는 고려인이 한글 문학작품 등을 실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고려일보는 1978년 카자흐의 크질 오르다에서 당시 카자흐 수도였던 알마티로 본사를 옮겼고 1991년 이전에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등지에 지사를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지사를 두고 있지 않다.


특히 재소 한인들의 시와 소설을 소개하며 연성용, 강태수, 김두철 등 많은 동포 문인을 발굴한 고려일보의 업적은 한국 문학사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다.


현재는 10여 명의 기자와 주필이 한글판과 러시아어판을 합쳐 주 1회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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