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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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2019년 12월 말 기준으로 일본에는 약 38만 명의 한국·조선인이 영주 자격을 가진 외국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 중 약 31만 명은 식민지통치 시대에 일본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과 그 자손이다. 해방 후에도 한반도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상황을 배경으로 재일 한국·조선인은 귀국하지 못한 채 일본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지배로 형성된 차별 구조와 남북분단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해방 후 75년이 지난 지금도 재일 한국·조선인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재일 한국·조선인 대부분은 1910년 식민지통치가 시작되고 나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돼 일본이 주권을 회복할 때까지 일본 국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후 재일 한국·조선인의 동의 없이 일본 국적을 박탈했고, 일본 대법원은 현재까지 일관되게 이 조치를 시인해 왔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조선인의 인권을 제약해 왔다. 많은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분야에 국적 조항이 포함되었고 공직에서도 배제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조선인 2세에 의해 인권 회복 운동이 직업선택권이나 사회보장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77년에는 내 아버지(김경득)가 한국 국적자로서 처음으로 사법 수습생으로 채용되었고, 외국적자에게 변호사의 길을 열었다(현재 일본에는 200명이 넘는 한국 국적 또는 조선적 변호사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 분야에서 국적 조항이 기본적으로 철폐되었다.


남은 제도적 과제의 하나가 지방참정권이다. 일본 국적법은 엄격한 혈통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어 나를 포함해 3세, 4세가 되어도 외국적인 채로 살아가는 한국·조선인이 많다. 일본 국적법에 귀화 수속 규정이 있지만 민족주의적으로 운용되어 왔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재일 한국·조선인 대부분이 문화적 동화 압력과 차별 공포를 이유로 귀화할 때 한국식 성을 일본식으로 바꾼다. 일본에서는 귀화가 법적인 국적 취득에 머물지 않고 민족적·문화적 동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강해 재일 한국·조선인 대부분은 지금도 귀화에 저항감을 느낀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납세 등 일본인과 똑같은 의무를 이행하는데도 재일 한국·조선인은 지방선거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에서 몇 세대에 걸쳐 거주하는 한국·조선인에게 지방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밖에 한·일 간의 다양한 정치적 갈등이나 식민지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의식 결여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혐한 움직임이 널리 퍼지고 한국·조선인에게 대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가 만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점점 내셔널리즘이 첨예화하고 있다. 오늘 재일 한국·조선인의 존재는 일본의 국가적 내셔널리즘으로 인한 식민지지배와 남북분단의 결과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재일 한국·조선인은 기존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역할을 동아시아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보장을 향해 미력이나마 노력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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