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8월호
특집/기획
화제
인물/역사
칼럼/문학
고국소식
재단소식
목록보기

동포광장

 

유공동포

한국계 러시아 록가수 빅토르 최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지 30주년을 맞았다. 그의 선대는 여느 고려인이 그렇듯 유랑의 세월을 보냈다. 함경북도 성진에 살던 증조부 최용남은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고, 조부 최승준은 1937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했다. 부친 최동렬은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거주지를 옮겼다.


빅토르 최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최동렬과 우크라이나 태생의 교사 발렌티나 바실리예브나 구세프 사이에서 1962년 6월 21일 태어났다. 고교 과정의 미술학교를 다니던 중 록그룹 ‘제6병동’을 결성했다.


세로프 예술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문화예술대)에 진학해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갔으나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록그룹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그 뒤 ‘가린과 쌍곡면’이란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1982년 여름 록그룹 ‘키노’(영화)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 ‘45’를 발표했다.


  빅토르 최는 서정적이면서도 시대정신을 담은 노랫말, 묵직한 중저음 목소리, 러시아 특유의 음울한 정서가 밴 멜로디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대표곡은 1988년 발표한 반전 가요 ‘혈액형’이었다. 국내에서도 윤도현밴드와 한대수 등이 번안해 불렀다. 이밖에도 ‘변화를 원해’, ‘비핵화 지대로’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소련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아이콘이 됐다.

  1990년 키노는 절정기를 맞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최대 경기장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6만2천여 명의 관객을 모아놓고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펼쳤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공연 일정이 잡혀 빅토르 최는 난생처음 증조부모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낚시를 즐기러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버스와 정면충돌해 즉사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열혈 소녀 팬 5명이 뒤따라 자살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소련 정보국 KGB가 교통사고를 가장해 암살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빅토르 최 추모 열기는 아직도 뜨겁다. 곳곳에 동상과 추모의 벽이 세워졌고 헌정 음반, 전기, 뮤지컬, 추모 공연 등이 선보였다. 2018년에는 그의 삶과 음악을 담은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개봉하는가 하면 빅토르 최 여권이 경매에서 1억5천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러시아 수교 30주년과 빅토르 최 30주기를 맞아 한·러 수교 30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러시아에서 양국 록가수들의 합동 공연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퀵메뉴
  • 목차보기
  • 퍼가기
  • 인쇄하기
  • 탑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