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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창


제 21회 '재외동포문학상' 중고·등 부문 장려상


얼마 전부터 나는 반강제적으로 한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굳이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바로 ‘2019년 해외 한국사능력검정 특별시험’에 나도 모르게 엄마가 날 신청했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보는 시험 때문에 진이 다 빠지는데 역사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는 슬픈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런데 이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참 신기하다. 분명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점점 나아갈수록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특히 내가 사는 카자흐스탄에 관한 얘기도 나왔는데 아주 궁금했다. 카자흐스탄은 과연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알고 보면 이곳은 한국엔 참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고려인’이란 이름에도 그 아픔이 스며들어 있다.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우리 민족이 바로 고려인이다.

내 친구 중에서도 고려인이 있다. 걔는 한국어도 할 줄 모르고, 한식을 먹는 것도 아닌데…. 꼭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인이라 소개한다. 왜 그런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하는 말이, 내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거든! 맞는 말인데,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러시아인처럼 생겨서 믿음은 안가지만….

얼마 전에 그 친구와 함께 알마티 교육원에서 열리는 3·1 절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올해도 만세삼창과 독립선언문 낭독, 합창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들이 치러졌다. 이런 역사적인 기념일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고려인이 모이는데 특히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이 오신다. 그들이 이국땅에서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잊지 않고 살아온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올해의 행사는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서 더욱 볼거리가 많았다. 조금 지루하던 1부보다는 2부가 훨씬 알찼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고려극단에서 준비한 홍범도 장군에 관한 연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홍범도 장군은 항일투쟁을 한 독립투사다. 그 유명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찌르면서 독립을 위해 힘썼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크즐오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고, 결국 그곳에 묻히게 되었다.

연기하는 배우들이 고려인이라 발음과 억양이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연극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려인의 발음과 억양이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았나 싶다. 같이 간 내 친구는 하나도 못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나는 연극을 보면서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이게 살면서 처음 본 연극이기도 하다. 나는 연극이 끝나고 한동안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살았다.

연극을 본 다음 날, 항상 문 앞에 걸려있던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해마다 엄마가 가져오는 달력이다. 고려일보사에서 나눠준다고 한다. 솔직히 색이나 디자인은 조금 촌스럽지만…. 오래 보다 보니 나름 괜찮아 보인다.

이 달력에는 특이하게도 항상 똑같은 24명의 사진이 있다. 예전의 난 그들에 대해 딱히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 호기심이 동했다. 과연 이들은 누굴까? “Ли Дон Хви(이동휘), Хон Бом До(홍범도), Мин Гын Хо(민긍호), Хван Унден(황운정), Ге Бон У(계봉우)… (이 밖에도 19명의 사진이 걸려있다.)”

물론 낯익은 이름도 있었다. 연극에서 보았던 홍범도 장군, 의병장 민긍호, 얼마 전 뉴스에서 본 황운정 지사와 계봉우 지사까지.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정체를 한번 밝혀보자고 결심했다.

알고 보니 이들 모두가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로 이주당했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정보를 찾는 데 의외로 애를 먹었다. 몇 명은 인터넷에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직접 고려일보로 메일을 보내서 알아내기도 했다. 난 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제법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왜 이런 영웅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달력의 인물 중에는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봉환하다’의 황운정 지사도 있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곤,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이국의 낯선 땅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의 투쟁에는 애국심뿐만 아니라 3·1 정신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등, 저항과 단결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난 역사를 알아가면 갈수록, 우리 민족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우리나라의 역사는 끊임없는 저항의 반복이라고 한다. 외세의 침략, 지배층의 비리와 착취 탄압, 이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저항함으로써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거머쥐었다. 벌써 2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촛불시위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국이 아니라서 TV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저 숱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저항의 촛불을 밝힌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했다.

3·1 운동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다. 만약 내가 3·1 운동 때 태어났다면, 난 독립영웅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내 민족 내 나라를 사랑한다고 해도, 저 가혹한 고문과 수많은 회유 속에서 끝까지 내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아직도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바로 거기에 3·1 운동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그 일을 해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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