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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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학

 

기고문

소설가 현장원이 아프리카 세네갈에 갔을 때였다. 거기 선교사로 가 일하는 베로니카를 만났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가까운 바닷가였다. ‘노예의 집’이 있는 고레(Goree)섬이 건너다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 잡은 식당은 정갈했다.


“세네갈에서 한국어가 얼마나 통하지요?” 현장원이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동포가 300명 정도인데, 한글학교에는 동포 자녀들과 이곳 학생들 해서 30명 정도가 와요.” 베로니카는 숫자를 예거하는 게 겸연쩍다는 듯이 조심해서 말했다.


“동포신문이나 잡지 그런 출판물도 나오나요?” 베로니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수평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로니카는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를 닦았다. 현장원은 질문을 잘못 했다는 뉘우침이 컸다.


“문제는 말이지요, 출판물 만들 재정이 마련되지 않는 거예요.” 하기는 그런 정도의 동포와 한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판물을 만든다는 것은 무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정’이라면 그게 몇 푼 되는 돈이겠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멍쿨했다.


“여기 세네갈에 한국인이 살고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에 한국어 문화권이 살아 있다는 뜻인데…. 한국어의 장래를 위해 뭔가 해야겠네요.” 현장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다만 한국어가 어떻게 살아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일 뿐이었다. “한국어는 말이지요…” 현장원은 그렇게 시작해서 자기 이야기를 펴놓았다.


어느 지역에 한국 재외동포가 산다는 것은, 그곳에서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국어로 된 출판물을 발간한다는 뜻이지요. 말로 소통하는 것은 형식요건이 느슨해서, 그 말이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글의 형태로 실행되는 출판물이 언어를 확정시켜 주어야 해요. 글로 수행되는 출판물을 통해서라야 문화, 학술, 이념 등을 드러낼 수 있거든요. 말만 있고 글이 없는 지역의 문화가 쉽게 소멸하는 것은 언어적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잖아요.


글로 구현되는 언어문화는 해당 지역의 언어와 상호 교섭을 하면서 자생력을 획득하게 되지요. 그런 언어적 자생력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증해주고요. 그러한 점에서 해외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 권역의 언어활동 가운데 문자언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할 사항입니다.


해당 지역의 동포 신문, 동포 잡지, 동포 글쓰기 등을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그 지역의 한국어가 명실공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시실 따지고 보면 금전적으로는 그다지 부담되는 액수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게 탈이지요.


“세네갈에서 생활하는 데에서 언어적으로 어려움은 없어요?” 현장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 세네갈의 통용어가 프랑스어라서 프랑스어 공부하느라고 진땀을 빼지요.”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일본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이 한국어를 금방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어의 언어정체성 덕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장원은 재외동포들이 김현승 시인 말대로 ‘겸허한 모국어’로 기도하고, 한국어로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모았다.


한국어를 매개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문화권 형성은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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