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4월호
특집/기획
화제
인물/역사
칼럼/문학
고국소식
재단소식
목록보기

칼럼·문학

 

기고문

재외동포들은 모두 애국자다. 그들만큼 한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1977년 첫 해외출장 이후 40여 년간 해외를 많이 다녔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간 거주하기도 했다. 1979년으로 기억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친선 경기 목적으로 왔다. 경기장 한쪽은 사우디인들로 가득 찼고 한쪽은 우리 건설 근로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기 시작 전 사우디 국가 다음 우리나라 애국가 연주가 있었다. 모든 한국인이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근로자들이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봤다. 물론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날 저녁 처음으로 가져본 생각이었다. 198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이 있었다. 오이로파라고 하는 조그만 호텔에 묵었는데 그 호텔 바로 앞에 기차역이 있었다. 처음 간 독일이어서 여장을 풀자마자 거리를 돌아보고 있는데 독일 남성의 팔짱을 낀 동양 여성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독일인과 결혼한 파독 한인 간호사였다. 병원 밤 근무를 위해 기차를 타려는 참이었고 남편은 아내를 배웅차 같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너무나 반가워하며 한국 소식들을 물었다. 그 독일인 남편 또한 나를 붙들고 최근의 한국 얘기를 많이 해달라고 간청했다. 아내가 한국을 너무 그리워하고 한국 소식들을 들을 때 매우 행복해한다는 것이었다. 30여 분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들의 한국인을 만난 반가움과 한국 소식에 목마른 간절한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40여 년 전 한국은 너무나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였다. 외국에 나가볼 수 있다는 하나의 이유로 비행기 승무원 시험이 몇십 대 일을 기록하는 그런 시절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멀리 독일까지 가서 돈벌이를 했다. 산업전사였고 한국의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애국자들이었다. 오래 세월 외국을 돌아다니며 재외동포들의 많은 모습을 보았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언제나 한국을 가슴에 안고, 한결같이 조국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재외동포들, 그들이야 말로 애국자들이고 대한민국의 제일 중요한 자산이 아닌가 싶다.


재외동포들을 위해 우리 정부에 한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내가 외국을 돌아다니며 재외동포들을 만날 때 한국인 2세들이 한국말을 못 할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 맞벌이 부부 등 너무 바쁜 부모님들의 일정으로 어쩌다 한국말 배울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한국말을 못 하는 그 본인들은 더 안타까울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 해결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러닝’(e-Learning) 시스템으로 전 세계의 재외동포 2세들이 쉽게 한국말을 배울 수 있다. 인터넷 시스템을 활용해 쉽고, 편리하고, 창의적으로 24시간 언제나 한국말을 배울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자. 요즘 이런 플랫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 플랫폼에 한국의 역사, 문화, 민속을 담고 한국의 발전상을 전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퀵메뉴
  • 목차보기
  • 퍼가기
  • 인쇄하기
  • 탑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