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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학

 

문학의창


나는 한국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16년 동안 자라왔다.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동경에 있는 한국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에 관한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되었고 한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다 보니 한국에 살아 본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을 사랑하고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국의 역사를 미디어에서 접할 기회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부끄럽게도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3·1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매년 3월 1일에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와 한국 뉴스를 보면서 왜 3·1운동이 일어났고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3월 1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함이 생길 무렵, 마침 나는 한국사 수업에서 3·1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근대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 의한 강제적 지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이었으며, 국가를 잃었다는 슬픔은 더 큰 고통이자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고통과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온 국민은 모여서 크고 작은 독립운동을 벌였고, 그중에서도 3·1운동은 전국민적인 독립운동의 시발점이다. 유관순 열사는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형무소에 갇혔다가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다고 한다. 당시 16살로 나와 같은 나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3·1운동에 참여하신 모든 분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고 우리가 있단다.” 3·1운동을 설명하시던 한국사 선생님의 눈은 붉어져 있었고 그동안 한국역사를 몰랐던 부끄러운 나 자신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존재도 3·1운동에서 투쟁하신 조상들의 노고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처음으로 일본사의 교과서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교과서 속에는 하나 익숙한 단어가 적혀져 있었다. 일본 교과서에서도 다루어진 3·1운동에 관한 내용은 중학생 때 충분히 알고 있는 내용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내가 전에 배운 내용하고는 너무 다른 설명이 담겨 있었다. “고종 사망 때문에 일어난 운동” “일본인 사상자가 생긴 운동” 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실제 일본이 행사한 비윤리적인 행동들은 적혀져 있지 않았다. 일본 때문에 일어난 독립운동을 모두 한국인의 오해와 돌발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인 일본을 보며 나는 화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당시 일에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일본이 미워 보였다.


그 후에 나는 두 나라의 교과서를 비교하며 읽어보았다. 그 당시 직접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나는 이 운동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3·1운동은 ‘March 1st movement’이라는 명칭으로 일본과 한국사람 말고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제3국에서 본 3·1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찾아본 결과, 많은 웹사이트에서의 3·1운동 설명은 한국역사 교과서와 별다름이 없었다. “일본에서부터의 독립”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어떤 사이트에서는 피해자 수부터 그 당시의 사진까지 공개되어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보며 일본이 큰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상황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저지른 악질적인 행위를 여전히 숨기고 있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면서 세계 모든 사람이 이 운동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일본사람들이 3·1운동에 대해 배운 주관적인 입장 뒤에 늘 숨겨져 있는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행위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3·1운동의 정확한 내용, 즉 객관적인 내용을 인정하며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담긴 교과서나 사이트를 고쳐나가면, 객관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재 악화되고 있는 한·일 관계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몸에는 두 나라의 피가 섞였다. 한국을 지배한 일본인의 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 지배를 당한 한국인의 피. 3·1운동이라는 운동을 볼 때마다 마음 한곳이 아파진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3·1운동 때 행한 비윤리적인 행동과 폭력을 인정하기도 전에 많은 시민이 한국 교과서에 실린 3·1운동 설명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역사도 중립적이지 않고, 감정적일 수도 있다. 요즘 한·일 문제의 뉴스를 보면 서로의 감정만 섞어서 국민을 자극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이런 감정적인 미디어는 올바른 역사를 배우는 우리 학생들에겐 진정한 것을 모르게 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판단할 때는 항상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라고 하신다. 나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배경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대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중립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다. 그리고 일본이 이 운동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게, 풀리지 않은 두 나라의 오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각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먼저 실천하려고 한다.


아직 객관적인 공부보다는 주관적인 생각이 먼저 앞선다. 아버지가 이야기했듯이 올바른 역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 3·1운동은 나에게는 한일 역사를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다. 3·1운동에 목숨을 바친 조상님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3·1운동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사실에 호소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바탕 위에 한국과 일본 국민의 역사적 사실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빨리 오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남명지(일본) 2019년도‘재외동포문학상’ 중·고등 부문 우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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