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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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학

 

동포문학


사춘기의 성장통으로 좌충우돌하며 부모님과 갈등을 일으키고 나만의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할 때, 우연히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여름 방학에 주최하는 ‘평화의 바람-국토순례’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은 나.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나는 국토순례를 통해 한국과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국토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다.


첫날, 한국인을 비롯해 중동, 아프리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중국 등 갈등으로 고통을 겪었거나 현재 갈등이 진행 중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형, 누나들과 강원도 고성군 거진에 위치한 거진 성당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얼핏 보기엔 내가 사는 중국 동북 지역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학교에서 길림성 박물관 견학을 갔을 때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의 전시물들을 보며 고구려를 우리의 역사 일부로 알고 있던 나와 중국의 변방 역사로 주장하는 반 친구들과 하마터면 몸싸움까지 할 뻔했던 기억과 더불어 하나라도 내 조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생각에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창밖을 내다봤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미사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한 후 통일전망대를 향해 출발했다. 통일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는 중간 중간 내려다보이는 동해 바다의 푸른 물결, 그 동해 바다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 하나가 금강산 자락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분단국가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이라며 흥분을 하는 우리 조의 한 형을 보며 내가 가질 수 없었던 한국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박물관에 들러 한국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교과서를 통해서 혹은 한국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조금씩 한국을 알아간다는 것을 깨달으며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 나의 나라, 나의 조국, 근래 중국과의 여러 가지 마찰로 인해 나는 한국의 물리적인 크기, 국가 경쟁력, 무역 흑자 등을 고민하며 통일 한국이 되면 중국과 조금은 대등하게 되지 않을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삼 일째 되는 날 거진 성당에서 짐을 꾸려 다음 행선지인 두타연에 도착했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어 원시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두타연에서 12km 행군을 했다. 분단, 이산가족 등 슬픈 한국 현대사가 자연 그대로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하니 풀 한포기도 그냥 보이지 않았다.


행군하며 지뢰 표지판을 심심찮게 보았다. 낮은 철조망은 위협이 되지 않아도 지뢰 표지판은 아직 한반도에 남아 있는 휴전국의 의미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진한 녹음에 취했다가도 수풀 속에 버려진 포탄 껍질과 낮은 고사목에 걸린 녹슨 철모를 보며 전쟁의 비극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발전된 서울의 모습과 대조적인 이곳의 정경이 한국의 지인들이 중국을 경시하는 말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중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이 얼마나 약소국인지 떠들어 댈 때 눈치만 보고 있던 내 모습과 닮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한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민통선 지역이 자연스러운 생활 공간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발길을 을지전망대로 향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막바지에 강제로 동원된 인민군으로 남한에 내려와 공산주의가 싫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서 평생 통일만을 기원하다 돌아가셨다.


어린 나를 보며 북한에 남겨두고 온 어린 아들을 떠올리셨다는 할아버지는 손수 쓰신 전쟁 기록물을 우리 가족에게 남겨 주셨다. 자세히 적힌 당시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할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졌었다. 이러한 이유로 난 이 곳 민통선 지역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실향민들이 통일을 원하는지 그리고 휴전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인민군 포로로 이북에 처자식을 남기고 오신 분이고 할머니는 남한군 병사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돌아가신 전 남편의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이 두 분이 휴전되고 이 십 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성당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 형제분들을 낳아 기르셔서 우리 가족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 방문시 두 분과의 용산전쟁기념관 여행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전사 통지서를 받아든 채 울고 있는 모형 전시물 앞에서 할머니는 오열하셨고 할아버지는 다른 전시물 앞에서 눈물을 거두시지 못하셨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나는 항상 한국의 통일을 생각해왔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내가 사는 지역을 만주벌판으로 부르셨고 육안으로 북녘 땅이 보인다는 애기봉에 날 데려가셨다.


민통선에서의 행군은 과거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들려주신 한국의 근현대사 속으로 나를 자꾸만 인도해갔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유독 손자 사랑이 많으셨던 분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시고 끝내 통일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직도 전쟁이 무서워 북한 관련 뉴스만 보시면 전화해 우리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할머니가 나를 이 평화의바람 국제 청년 평화순례로 이끌어 주셨다고 생각하니 현재 내가 마주하는 한국의 모습이 그냥 자연의 풍경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 사촌들에게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고민들이 날 더욱 한국적이고 한국을 사랑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일까? 순례 육일째 되는 날 파주 율곡 습지로의 여행은 나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난 사실 한국이 중국과의 역사에서 늘 당하기만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엄청난 문화유산을 지닌 중국과 비교해서 한국만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왔다.


임진강 주변에 위치한 파주 율곡 습지는 이런 나에게 한국의 모습을 다시 정의할 기회를 주었다. 옛 농기구가 있는 초가집에서, 들녘에서 풀을 뜯는 소의 풍경에서,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정자에서, 삐뚤삐뚤하고 익살스럽게 세워진 장승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솟대와 높게 쌓아 올린 돌탑에서 한국 옛 농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웅장하지 않게 소박한 모습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는 위대함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한국인의 생활을 보았다. 이번 평화순례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며 한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용기와 포부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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