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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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집계 재외동포 현황(2017년 기준)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한인은 총 1만853 명이다. 국가별 한인사회 규모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3천650명(전체의 34%)으로 가장 많고 이어 케냐(1천221명), 가나(726명)이고 4번째가 탄자니아로 한인 숫자는 641명이다. 킬리만자로 산과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유명한 탄자니아는 한반도의 약 4배 크기의 영토와 5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1992년 4월 수교했다.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탄자니아도 수교 이전에 한인이 먼저 들어갔다. ‘한인 이민자 1호’는 이태조(66)·이해명(57) 씨 부부다. 남편 이태조 씨가 26년 역사의 탄자니아 한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부인 이해명 씨는 현재 4년째 한인회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 금광회사에 상무로 근무하던 이 씨는 1989년 당시 5천 불 월급에 집세와 차량을 제공해준다는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 부인과 함께 ‘겁 없이’ 탄자니아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현지 금광회사가 1년도 지나지 않아 망하자 고생길이 열렸다. 봉제업을 시작했으나 환율이 떨어져 견딜 수 없게 됐고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방역사업도 마다치 않았다. 연막 소독약을 뿌리는 일이었다. 한국인 지인의 도움으로 생필품 수입상을 할 때는 가방의 돈을 셀 시간이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물건이 귀하다 보니 한국에서 100원에 들여와 1천 원에 팔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값싼 중국 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 사업도 더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에는 현지의 일본회사에서 제의를 받고 일하게 됐는데 탄자니아 정부에서 문제 삼고 나섰다. 투자자로 들어와 다른 나라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추방령을 내렸다. 이 씨 부부는 탄자니아 정부 이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수년간의 재판 끝에 승소했다. 그러나 그동안 모아놓은 돈은 소송비로 날리고 일본회사도 못 다니게 됐다.


그러는 사이에 한편으로는 탄자니아에 들어오는 한인들이 차츰 늘어났다. 국교수립이 계기였고 그 과정에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이태조 씨는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활달한 성격의 부인 이재명 씨는 선교사를 비롯해 한국에서 누가 오면 너무 반가워 집으로 모셔 음식을 대접하는 바람에 이 씨 부부가 큰돈을 번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지금은 대사관 직원을 비롯해 코트라, 코이카 등 기관과 건설업체들이 진출해있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에서 경제성장률이 7%에 달할 정도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25년도에 극빈국에서 중진국으로 오르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친한파인 존 마구푸리 대통령이 2015년 취임하면서 한국 건설업체들은 탄자니아에서 좋은 기회를 맞았다. 건설부 장관 출신인 마구푸리 대통령은 근면한 한국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병원, 교량, 도로, 상수도를 한국업체가 건설했고 국책사업인 철도 공사의 설계·감리·감독을 한국이 따낸 데 이어 일부 구간 시공도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탄자니아 정부가 올해 1월 말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한 것은 가까워지는 양국 관계를 보여준다.

한글학교와 한인교회는 경제 수도 다레살람에 한 곳씩 있다. 한글학교는 15년간 이 씨 부부 집을 빌려 썼고 현재는 한인교회를 이용하고 있다.

‘평화의 샘물’ 사업, 한인 단체의 적극 지원으로 확산


탄자니아 한인회 활동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평화의 샘물’ 지원사업이다. 탄자니아는 물 사정이 열악해 다레살람을 벗어나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전기와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을 아침마다 걸어서 30분~2시간 거리에 있는 상수원에 의존하고 있으나 웅덩이에 고인 물을 받아 사용하는 것에 불과해 매우 비위생적이다. 아이들이 물이 없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던 이해명 회장은 적은 돈으로 평화를 알릴 방법은 우물을 파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물 한 곳을 파는데 드는 비용은 약 5천 불.


이 회장은 개인 돈으로 이 사업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보고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임도재 아중동한인회총연합회 회장과 김점배 아중동한상총연합회 회장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받으면서 ‘평화의 샘물’ 지원사업은 첫발을 내디뎠다.

첫 우물을 판 곳은 노예시장이 있었던 바가모요 시골 마을에 있는 케레게와 마핑가 초등학교. 올해 2월 2일 개수식 행사에서 아중동한인한상총연합회 임원들이 준비한 간식과 학용품을 나눠주자 1천여 명 학생들은 잔칫집에 온 것처럼 기뻐했다. 이어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아중동한인회총연합회 총회에서 평화의 샘물 얘기를 들은 민주평통 유럽지역 박종범 회장이 전폭적 후원을 약속하면서 추가 지원으로 이어졌다. 탄자니아 진출 한인기업 제일엔지니어링도 후원에 동참하고 나섰다. 탄자니아에서 시작한 평화의 샘물 사업은 이제 물 부족이 심한 말라위, 남아공, 가나, 잠비아, 짐바브웨 등의 지역 한인회와 아중동한인한상총연합회의 사회공헌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평화의 샘물 사업은 10월 4일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한인회 모범 운영사례로 소개됐고 이해명 회장은 자랑스러운 한인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현재 다레살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데 빈방이 없을 정도로 사업이 잘되고 있다. 한인회장대회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자주 나오는 것을 꺼린다면서 그 이유로 “한국은 모든 게 너무 편해서 한국에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지기 때문” 이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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