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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동포

일제 강점기 고국과 멀리 떨어진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활동을 벌인 한인 청년단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자지 신문 등 자료가 8월 13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독립기념관은 제73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하와이 한인사회의 민족교육 지도자이자 청년운동가인 강영각(1896∼1946) 선생을 비롯한 한인 청년단체의 활동상을 담은 자료들을 이날 공개했다. 이들 자료는 강 선생의 딸 수잔 강 여사(74·하와이 거주)가 지난 6월에 기증한 것이다.


기증된 자료는 1920∼1930년대 강 선생과 하와이 한인 청년단체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첩 2권(323장)과 그가 발행인이자 주필로 활동한 영자지 ‘더 영 코리언(The Young Korean)’ 35점, ‘더 어메리컨 코리언(The American Korean)’ 24점 등 총 382점이다. 사진첩에는 당시 하와이 한인 청년들이 모여 고국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 일제 투쟁 방향을 논의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더 영 코리언’은 미주 지역 한인사회의 최초 영자 신문으로, 특히 해마다 3·1절 관련 기사를 빠뜨리지 않고 전했으며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한반도, 중국, 동남아 등 침탈 행위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때 한인사회는 3·1절을 한국독립기념일로 정하고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태극기를 흔들며 야외 집회를 열었다. 강 선생이 한글이 아닌 영어로 신문을 발간한 것에 대해 독립기념관 측은 ‘한인사회보다 20배나 큰 규모의 일본인사회가 주류를 차지하는 하와이에서 조선에 대한 왜곡된 뉴스를 바로잡고, 조선인의 우수성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널리 알리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독립기념관은 “이 자료는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을 어떻게 지원했는지, 강 선생이 청년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청년들이 민족의식이 투철한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인 단체를 지도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남 강서군 증산에서 태어난 강영각 선생은 1905년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을 떠난 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업랜드 공립초등학교와 클레어몬트 공립중학교를 거쳐 클레어몬트 포모나대학을 졸업했으며, 다시 하와이로 건너와 청년단체를 조직하는 등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97년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

그의 부친 강명화 애국지사는 대한인국민회 북미 총회장을 맡아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5남인 강영각 선생을 비롯해 그의 형 영대, 영소, 영문, 영상 선생과 사위 양우조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 사위 등 7명이 독립운동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 명문가문이다. 국가보훈처는 8월 14일 강 선생의 형 가운데 후손을 찾지 못했던 영대, 영문, 영상 선생의 미전수 훈장을 조카인 수잔 강 여사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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