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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동포

한국 간호사의 독일 취업 길을 개척한 이수길(89) 의학박사는 ‘파독간호사 대부’로 불린다. 1959년 서독으로 건너가 유학한 뒤 전문의로 활동하던 이 박사는 당시 간호사 부족현상을 체험하고 양국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국의 간호사 파견이 이뤄지도록 산파 역할을 했다.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독일에서 성공한 의사로 인정받는 이 박사는 파란만장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2007년 말 회고록 ‘개천에서 나온 용’을 펴냈다. 그는 “회고록을 쓴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장애인과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세계적인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거주하는 마인츠 시내에서 웬만한 택시 기사에게 ‘닥터 리’에게 가자고 하면 주소를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독일에서 진료한 환자 수가 40만여 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소아과 및 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 국립대학 병원에서 근무했고 1974년부터는 마인츠에서 소아과 의원을 열고 진료를 계속해왔다. 민족사의 격랑은 그의 개인사에 역경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함경북도 풍산이 고향인 그는 한국 전쟁으로 가족이 월남함에 따라 고학으로 의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와 불굴의 노력으로 의사로서 자리를 잡았지만, 조국의 현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정보요원에 의해 강제로 한국으로 끌려가 1개월 동안 심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독일 언론과 정부의 압력으로 풀려났다.

이 박사는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고초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대해 원망은 없다. 어떤 오해와 비난을 받아도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한국 간호사의 독일 취업 물꼬를 트는 일을 주선하면서도 여러 가지 음해와 비방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간호사가 독일에 취업하는 일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고 특히 한국의 유능한 간호사들이 훌륭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이 일을 추진했다. 그는 “간호사의 파독은 정부와는 무관하게 진행됐다.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받았다든지, 간호사들이 와서 시체를 닦는 일을 했다는 등의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박사는 소아마비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19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72년 사단법인 한독협회를 창설해 회장으로 활동했고, 1973년부터 심장 기형 아동에게 무료 시술 운동을 전개해왔다. 또한,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장학 사업도 펼쳐왔고 2010년에는 파독 간호사 등과 관련한 소장 자료를 독일 중앙문서자료박물관에 기증했다. 독일 연방 대통령이 수여하는 독일공로십자훈장에 이어 올해 8월 9일 독일 연방정부의 최고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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