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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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하면서 중동국가에 속하는 이집트는 한반도의 5배에 가까운 면적에 1억 명에 달하는 중동의 최대 인구 국가이다. 기원전 5,000년경 나일 강 유역에서 태동한 인류 최초의 문명을 자랑하는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찬란했던 고대 문화 유적과 수에즈 운하뿐만 아니라 1943년 카이로 선언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우리나라와 1961년 영사관계를, 1995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집트국민들은 한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2000년대 이후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외교부 집계(2017년 기준)에 따르면 이집트 거주 한인 숫자는 970명이고 수도 카이로에 883명이 살고 있다. 한인들은 90%가 카이로 동남쪽 마아디 지역에 모여 산다. 이곳은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외교단지로 조성한 곳으로 외국인들이 많다. 한인이 이집트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74~75년 무렵으로 조경행, 정동호, 한상옥, 김갑주 씨 등이 1세대 원로들이다. 한인의 업종별 현황은 지상사·대사관·공기업 종사자 550여 명, 선교사 200여 명, 식당, 여행업 등 자영업 종사자 150여 명, 유학생·국제결혼·현지취업자 100여 명 등이다. 그 밖에 소수의 무역업 종사자가 있다.


한인사회에 영향을 준 이집트 내 주요 사태나 사건은 1973년 10월 6일 시리아와 연합한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한 제4차 중동전쟁을 꼽을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이집트 사다트 정권은 승리를 주장하면서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 포트사이트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었고 한인들이 수입 창구 포트사이트에서 섬유와 잡화류 무역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2014년 2월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동부에서 성지순례 한국인을 태운 버스가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한국인 관광객 2명과 이집트 한인교회 신도 1명 등 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으로 이집트 내 여행업과 요식업 등 관련 한인 업체는 큰 타격을 입었고 100여 명에 달했던 여행 가이드들은 터키로 일자리를 옮겼다. 관광상품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 올해 1월부터 한국인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3월 26~28일 대선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재선된 후 치안이 많이 개선됐으나 한국 정부의 여행제한조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케이팝 행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오는 ‘가족행사’로 발전”


 이집트에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은 한국문화원이다. 2014년 10월 중동에서 최초로 문을 연 한국문화원은 케이팝 공연뿐 아니라 한국영화 상영, 요리 강좌, 태권도 체험, 한글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집트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문화원이 개설되기까지는 박재양(58) 전 원장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2006년 한국대사관 문화홍보관으로 이집트에 온 지 12년만인 올 1월 귀국한 그는 “우리나라 상품이 널리 보급되고 국력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이집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며 “케이팝 행사만 봐도 과거에는 이집트 젊은층만 왔는데 이제는 부모와 젊은이가 함께 오는 ‘가족행사’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상품 인기에 편승해 국가 이미지도 좋은 편”… “태권도 사범의 국위선양 돋보여”

그의 말대로 이집트에서 한국상품의 인기는 매우 높고 그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편이다. 현대차·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이 30%에 육박하고 삼성전자 휴대폰은 시장 점유율 1위이다. 한국학교의 변모는 이집트 한인사회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1979년 교육부 인가가 났을 때만 해도 교사는 1명이었고 대사관저 지하실을 이용해야 할 처지였다.

1980년대에 한인회가 나서서 모금운동을 해 당시 20만 불을 모았고 정부에 건의해 100만 불을 지원받아 학교를 지었다. 지금은 교사가 6명, 교장이 있고 초등학생이 30명에 달한다. 이집트에서도 태권도 사범의 국위선양 기여가 돋보인다. 1974년 유학생 신분의 노승옥, 조경행 사범이 개인 자격으로 이집트에 처음 태권도를 보급했고, 이를 계기로 1978년 이집트 태권도협회가 발족했고, 이듬해 세계태권도연맹(WRF)에도 가입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정식으로 태권도 사범을 파견했는데 정성홍, 정기영 사범에 이어 임한수 사범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임 사범은 32년간 이집트에서 10만 명이 넘는 태권도 인구를 확산하고 태권도를 통해 한류를 퍼트렸다. 이집트인들은 산업이 낙후되어 있지만 ‘문명의 발상지’, ‘아랍권의 맹주’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러한 위상과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서인지 중국과 일본은 이집트를 전략 지역으로 중시해왔다.

이집트에 진출한 중국인은 5만 명을 넘어선다. 대표적 IT업체 화웨이의 아프리카 본부가 카이로에 있고 신화통신사 기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 일본도 커뮤니티가 3천 명에 달하고 17개사의 언론사가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3개 언론사가 특파원을 두고 있는 한국과는 격차가 크다. 그러나 갈수록 한국문화를 접하려는 이집트인이 많아지는 추세는 한인사회의 장래를 밝게 해주는 신호이다. 2005년 카이로 아인샴스대에 이어 2016년 아스완대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는 등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집트인이 부쩍 늘어난 것은 한류 확산을 뒷받침하는 한가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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