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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문학


늦더위라 했다.

올해는 유난히 더 늦게까지 더위가 남아 떠나지를 못한다고들 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분명 가을이 가까워 왔음을 알리는데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내일 최고 기온 예보가 문득 와 있는 가을을 어색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낮의 그 더위는 분명 한여름의 그것과는 다르다. 햇볕은 살갗에 아주 따갑고 땀 흘리며 웬 더위야… 하면서도 선뜻 선뜻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덥다’가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 그렇게 자연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기후변화가 이런 재앙을 갖고 왔네요” 그런 통탄의 답을 화면에 담기 위해 열심히 취재를 하는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국 피디들을 당황하게 만들며 “가뭄이 왔지만 때가 되면 비가 내려 줄 것이고… 뭐 괜찮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호주. 지구 최남단의 커다란 섬나라에 그렇게 계절이 가며 자연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계절을 어느새 서른일곱 번 넘게 맞이하고 있다. 서른일곱 번.

어느 날 문득 느껴졌다. 아, 어느새 내가 태어난 곳,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여기서 살아낸 시간들이 더 많아졌구나 라는. 그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없진 않지만 이유 불분명한 서러움이 묻어 있는 느낌.

“남의 나라 생활 37년이 어디 만만하기만 했겠느냐”

존경하는 한국의 한 작가 선생님은 내게 그렇게 표현을 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울컥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왜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딱히 내놓을 답은 없다.

새삼 지금 힘든 일이 생겨난 것도 아닌 건 물론이고 무슨 개척 이민이나 망명을 온 것도 아니니 힘들고 서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 잘살겠다, 내 가족 잘 살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고향 땅 뒤로 하고 와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나라고 뭐 다른 건 없다.

어찌어찌 먼저 호주 땅에 정착하게 된 아버지 덕(?)에 결정권은커녕 자기 자신의 거취를 정하는 것에도 아직 확신이 없던 나이에 ‘가족 이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 와서 산지 어느새 그만큼.

가끔 방문하는 한국에 가면 한국인 같지 않은 사람이 되고, 호주에서 살아가며 호주 사람이 되지도 못하는 그 어정쩡한 자리를 지켜 온 게 어느새 그 만큼의 세월이 되었다는 그것뿐이다.

떠나올 때는 ‘에이 이 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 희망이 없다’라고 큰 소리 쳤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애국자의 대열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게 된다.

너희들이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알기나 하느냐고 200년 조금 넘은 짧은 역사를 가진 호주를 슬쩍 얕잡아 보기도 하고, 잠시 방문한 가수 ‘싸이’는 내 아들, 내 삼촌인 양, 공연히 어깨에 힘주며 자랑을 일삼으며 ‘이민자’들은 해가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애국자’ 진정한 한국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누가 이민 가라고 등 떠밀었던가? 아니다. 정말 살 수 없어서 야반도주라도 했던 것인가? 그도 아니다.

그런데 공연히 그렇게 서러웠다. 패배한 느낌, 등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 같은 그 서러움. 그래서 호주인 앞에서는 한국인이라 자랑스러운 척 하고 한국 방문길에는 선진국 호주에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지 은근히 자랑질 하며 떠들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그렇게 서러워라 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지성 갖춘 학부모 되었을 것을 공연히 남의 나라 와 사느라 겪은 조바심이 한 두 번이던가. 받아 온 유인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준비물 제대로 챙겨 보내지 못한 엄마 될까 두려워 아는 단어도 사전에서 확인을 하고 또 하며 스스로를 한심해 했던 나날들.

머릿속에서는 이만큼 멋진 말을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굴려도 제대로 되지 못하는 발음 때문에 혹시 내 말이 잘못 전달될까 두려워 본의 아닌 과묵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아빠들.

하루 새에 호주 수상이 바뀌었는데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선거도 없이 한 나라의 수상이 바뀌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해하며 너무나 당연하게 설치해 놓은 한국 위성 TV를 뚫어져라 보게 되는 시간들.

이런 저런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고국의 뉴스라야 뭐 그리 늘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잘 되었다느니, 앞으로 이리저리 하면 될 것이라느니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평을 할 수 있어 속이 시원해지곤 한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는 여기 와 살고 있으니 이제 자꾸 한국으로 가는 관심 좀 끄고 여기 정치 형태도 좀 배우며 여기에 집중하며 살자고 말은 하지만 마음 어디 한편은 늘 거기, 바로 두고 온 내 나라, 떠나 온 내 고향에 걸쳐 놓을 수밖에 없다.

그 돈이면 다른 나라 구경 한 번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에 수긍을 하고 또 그렇게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마치 철새처럼 한국을 찾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일 년 사 계절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내 나라의 소중함은 더 깊어만 간다.

거기, 이제는 기억 희미해지는 어린 시절의 내가 좁은 골목 어디에서 빠끔히 고개 내밀어 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광화문, 바람 유별나게 세게 불던 당주동 골목 어귀에 세상의 슬픔이나 고민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건방진 스물의 내가 아직 서성이고 있을 것 같은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첫사랑이 어디선가 머리 허연 노인이 되어 살고 있을지도 모를 곳.

남 의 나라 와 참 열심히 살다가 결국 그 ‘남의 나라’에서 하늘나라로 가 버린 내 엄마의 꽃다운 소녀 시절이 묻어 있을 정동 어디쯤이 아직 남아 있는 곳.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래. 시험공부하며 달달 외웠던 그 시구처럼 그저 그립다 말을 하면 터져 버릴 눈물 알기에 아닌 듯, 괜찮은 듯 그렇게 살아 온 것이지.

이제는 그립다 말을 해도 괜찮다.

열심히 참 바쁘게, 뒤 돌아 보지 않고 곁눈질도 하지 않으며 잘 달려왔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끓어오르는 그리움, 잘도 다독이며 살았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워 할 거다.

하얗게 내린 설악산 눈이 보고 싶으면 겨울에 비행기 표를 끊을 것이고 문득 두릅나물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지면 봄기운 가득한 여행가방을 꾸릴게다. 더 많은 세월 지나 딸아이가 안겨주는 손주가 물어오면 두런두런 옛날 얘기처럼 해 줄 거다.

“옛날에… 할머니의 아버지랑 어머니가 정말 작은 가방 하나 달랑 싸서 졸망졸망한 아이들 데리고 이 나라에 왔더란다. 참 깊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래도 열심히 살았더란다. 그립다고 말하면 눈물 나게 더 그리워질까 봐 다독다독 마음 여미며 그렇게 살았는데….”

그 그리움을 조그마한 그 아이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하면 이토록 사무쳤던 그리움이 아마 아름다운 추억 되어 파랗고 하얗고 또 노란 풍선처럼 마음에 두둥실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설렘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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