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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만 재외동포가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직종 가운데서도 ‘태권도 사범’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한인 태권도 사범은 수련생뿐만 아니라 현지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 정신, 언어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한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한인 이민 역사에서 태권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태권도 사범이 ‘이민 1호’가 된 나라도 있다. 중미의 온두라스가 그렇다. 한반도 절반 크기의 국토면적과 86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카리브 연안에 있는 가톨릭국가. 서울에서 가려면 비행기 탑승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머나먼 나라다.


이민자로 온두라스 땅을 처음 밟은 사람은 태권도 사범 송봉경(2008년 작고) 씨다.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이던 송 사범은 1976년 온두라스 국방부 초청을 받아 육군사관학교 무술교관으로 갔다. 1년 뒤에는 송 사범의 부인으로 현재 온두라스 한인회장인 강영신(65) 씨가 온두라스에 들어갔다.


강영신 회장은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남편을 만나면서 온두라스에 정착하게 됐다.


한국과 온두라스는 1962년에 국교를 수립했으나 2004년에야 상주 대사가 부임했다. 강영신 회장은 “우리 부부가 갔을 때 온두라스에는 한국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어요. 10년간 우리 가족만 살았어요. 아들·딸이 온두라스 출생 한국인 1호입니다” 라고 말했다. 송 사범은 처음에는 대통령 경호실과 군, 경찰을 상대로 유도를 가르쳤다.


 40년 전이라 매트리스조차 없이 톱밥을 깔고 연습했으나 수련생들이 이를 싫어해 유도에서 태권도로 바꿨다. 송 사범은 열성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고 이를 평가한 온두라스 대통령으로부터 명예 시민권을 받아 개인체육관을 세웠다. 마음 놓고 즐길 공원 하나 없는 곳에서 태권도 체육관은 상류층의 사교장이 됐고 송 사범은 온두라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송 사범의 태권도 제자 가운데는 군 장성, 국회의원, 장관 등 유력인사가 즐비하다. 제자 가운데 대통령도 나왔다. 로보 로사 전 대통령은 1994년 산림청장 재직 시절 ‘송봉경 종합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남다른 인간관계를 맺었다. 매일 새벽 5시에 도장에 나와 태권도를 수련했고 국기원 공인 3단증을 받을 정도로 태권도 ‘광팬’이 됐다. 국회의장 재직 당시 스승인 송 사범에게 최초로 국회훈장을 수여할 만큼 각별히 예우했다.

송 사범 사후에도 부인 강 회장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던 로보 대통령은 2011년 강 회장을 한국 대사로 지명했다. 국내법 규정에 저촉되어 철회하기는 했지만 대신 강 회장의 현지인 사위를 한국대사로 발령낼 정도로 남다른 친분을 과시했다. 췌장암으로 63세를 일기로 타계한 송 사범의 장례식은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이 되어 성대하게 치러졌고 로보 대통령과 체육계 관계자들은 송 사범의 생일인 1월 4일을 온두라스 ‘태권도의 날’로 제정했다.

온두라스에 한인이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1987년부터다. 인건비가 싸서 의류·봉제업 분야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한인들은 800여 명까지 늘어났고 한국인 기업도 70여 개에 이르렀으나 2009년 쿠데타가 일어나 최저임금제가 실시되는 등 여건악화로 지금은 한인이 250~300명으로 줄었고 한인 기업도 10개에 불과하다. 한인교회가 2곳, 한식당이 2곳, 한국학교가 있다. 모두 테구시갈파가 아닌 제2 산업도시이자 항구인 산페드로술라에 모여 있다. 테구시갈파에는 대사관 직원과 강영신 회장 등 20명만이 살고 있다.

“송 사범 부인 강영신 한인회장, 24년간 한국학교 교장으로 봉사”

강영신 한인회장은 1994년 한국학교를 세워 24년간 교장을 맡고 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주말이면 가는데만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산페드로술라까지 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지금은 버스를 이용하는데 왕복 9시간이 걸린다. 남편 못지않은 ‘의지의 한국인’이다. 미국으로 가는 마약 루트인 온두라스는 낮에도 함부로 집밖에 못 나가고 상점마다 민간인 경비원을 둘 정도로 치안이 위험하다. 그런데도 강 회장이 40년간 살면서 한국학교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온두라스에는 다문화가정이 많다. 얼굴은 한국사람이고 한국 이름까지 갖고 있는데 아빠가 없는 아이들. 드러난 아이만 30여 명이고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강 회장에 따르면 이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와서 한글을 배우는데 한국인 피가 섞여서인지 너무 똑똑하고 우리말을 잘한다. 강 회장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아빠에 대한 서운한 감정과 상처를 갖고 자라면 평생 한국에 대한 반감을 품을 수 있어 이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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