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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며 미국 내 한인의 위상을 높인 ‘하와이 한인사회 대부’ 김창원 회장이 3월 27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낸 그는 평소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면 갈 준비가 돼 있다’고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부음을 접한 하와이 한인사회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애도했다. 고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화공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전쟁 때 미군 통역관으로 일하다 1952년 하와이에 이주해 하와이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건축회사에 입사해 말단 직원에서 회장직에 오르는 샐러리맨 신화를 이룩한 뒤 한인사회와 지역사회에서 기부와 헌신의 삶을 실천했다.


미주한인 최초의 하와이주립대 이사장과 총동창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모교를 위한 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앞장섰고, 60만 달러 상당의 사재도 기부했다. 3달러 모금운동을 주도해 미주 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했고,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발전기금 15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하와이 한인사회 부자 만들기’ 프로젝트로 한인 은행 ‘오하나 퍼시픽은행’을 설립했고,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이사장직을 맡았다. 2009년에는 한국의 KAIST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길 바라며 100만 달러를 내놓았다.


평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교육이 좋지 않으면 나라가 좋아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을 몇 개 세우고, 몇 퍼센트가 학위를 취득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신교육과 역사교육,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시민의식 등 기초교육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이 상상력을 익히고 발명할 수 있는 능력을 이끌어줘야 하는데 과거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주입식 교육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이민 100년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진 데 대해 그는 “부모님과 형님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1903년 첫 이민 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인천항에서 102명이 처음 하와이로 출발할 때의 일원들이었습니다. 2003년이 하와이 이민 100주년인데 한국 정부가 도와줬고, 중국에서도 참여하고, 정말 세계적으로 참 의미 있게 행사를 치렀습니다. 평생에 제일 잘한 것 가운데 하나로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첫 번째 이민자였기에 더 뜻깊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는 좌우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이 평생 기억하라며 말씀해주신 3가지 내용이다. 첫째, 어려울 때나 실수할 때 도와준 사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과 둘째, 어디서 살든지 지역 일에 참여하고 끝까지 약속을 지키라는 것, 셋째는 기부를 하려면 누가 본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국 정부로부터 2003년 동포사회와 조국 발전을 위해 힘쓴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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