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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븐스’는 2005년 인도네시아 땅그랑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아주머니 몇 분이 힘을 모아 만든 단체로 수카르노 하타 공항 뒷길의 한센병 전문 병원 근처에 모여 사는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습니다.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곳 사람들에게 매주 5kg의 쌀을 나눠주는 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개인과 단체의 참여가 늘어나 100여 가구의 한센 가정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저와 어머니는 600kg이 넘는 쌀을 함께 나릅니다. 어머니가 흘리는 땀방울이 햇살에 반짝일 때면 그게 아침이슬보다 더 곱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븐스’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이 봉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어 스스로 동참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한 번도 이 일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은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이 되어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그린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 내용을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이태석 신부님인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집에도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센병. 흔히 문둥병이라 불리는 무서운 천형. 그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곁을 지켜주고 섞여서 말을 나누고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고 포옹도 해야 하는 상황을 아들인 제가 온전히 받아드릴 때가 오기를 어머니는 오랫동안 기다려주었던 겁니다.


한센인 마을로 향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저 또한 봉사에 나서면서 5년간 한센병 가족들과 많은 추억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손가락이나 발가락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팔이나 다리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쌀을 나눠주다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5kg의 쌀 포대를 힘겹게 드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힘들게 쌀을 짊어지고 가는 그들 뒤로 아이들이 따라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진흙 위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마음이 짠해지곤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었고 직접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부방의 제일 어린 꼬마 학생은 파자르입니다. 형을 따라 5살 때부터 공부방 구석을 차지한 이 꼬마는 혼자 놀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귀염둥이입니다. 형의 공부가 끝날 때까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형인 자말은 머리도 좋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애착을 가지고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형제는 언제나 제가 공부방에 도착하면 달려 나와 반깁니다. 파자르는 달려와 제 품에 안기곤 하는데 찜통 같은 공부방에서 제가 유일하게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파자르가 언젠가부터 얼굴에 흰 파우더를 바르고 나타나기에 어머니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품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데 지저분한 게 미안해 공부방에 오기 전에 목욕하고는 파우더를 발라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품은 이 아이가 온전히 자라서 그 향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는 한센병 환자이지만 본인들은 정상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위생 시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피부병이나 호흡기 질환을 앓는 경우가 유독 많습니다.


그 중에서 안드레라는 중학생 아이는 늘 얼굴이 어둡고 피부에도 부스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자못 궁금했지만 상처가 될까 싶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석을 한 번도 안 하던 이 학생이 몇 주째 공부방에 나오질 않아 물어물어 집을 찾아갔더니 일어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앓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아픈 것보다 자신이 사는 누추한 집에 선생님이 찾아온 걸 더 송구한 듯 힘들어했습니다. 그가 사는 움막 같은 집은 옆에 큰 하수구가 있어 악취 때문에 집안에서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화장실과 수도가 없어 대소변을 하수구에서 해결하고 물은 옆집에서 얻어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평소 이 아이가 왜 얼굴이 어둡고 피부병을 달고 사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제 머릿속엔 온통 안드레 생각뿐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6개월 용돈을 부모님께 미리 받아 마을 분들과 함께 안드레 집에 화장실과 수도를 설치해드렸습니다. 이제 안드레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잘 어울리는 건강한 모습으로 공부방을 찾습니다.


누눌은 총명하고 예쁜 여자아이입니다. 공부방 초기부터 지금까지 결석 한 번 없이 제 곁에서 배움을 꽃피우고 있는 수석 제자입니다. 두 해전 한센병을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누눌은 꿋꿋이 공부방에 나오고 학교도 다닙니다. 학교 담임선생은 어디에서 과외를 받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누눌은 한국인은 좋은 사람이고 한국도 좋은 나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쌀을 나누어 주고 공부를 가르쳐 주는 데다 훗날 한국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눌은 더는 절망이 어울리는 아이가 아닙니다. 그 아이 자체가 미래이고 희망입니다. 비바람에도 끄떡 않고 혼자 그늘을 드리우고 우뚝 서 태양과 마주하는 야자수 같은 아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어머니는 해븐스 봉사 활동 시 꼭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한센병 가족들에게 어설픈 위로와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100% 실천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이야기하며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입니다. 막연한 기대나 희망만을 던져 주는 것이 얼마나 그곳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해븐스 공부방에서 보낸 시간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떠난 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봉사자가 없어서 큰 걱정입니다.


요즘에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영어 문법을 인도네시아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제 뒤를 잇는다면 좀 더 수월하게 가르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입니다. 앞으로 누군가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온다면 전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천사였고, 그 아이들과 함께 한 곳이 천국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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