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8월호
특집/기획
화제
인물/역사
칼럼/문학
고국소식
재단소식
목록보기

고국소식

 

한민족공감



1920년대 말부터 신한촌구락부 연예부, 김니콜라이연주단 등 아마추어로 구성된 소인(素人)예술집단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193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노동자청년극장이 설립됐다. 이를 토대로 1932년 9월 9일 ‘고려극장’이 출범했다.


출발은 공산주의 사상 선전과 소수민족 관리를 위한 소련 정책의 일환이었다.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기리거나 집단농장의 작물 증산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무대가 꾸며졌고 노래 후렴구는 대부분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민족 정서의 명맥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춘향전, 심청전 등 우리나라 고대소설을 연극으로 꾸몄고 민요 가락을 접목해 노래를 지었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스탈린 정권의 결정에 따라 연해주 고려인들이 강제로 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것이다. 고려극장 단원들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대부분 옮겨갔고 일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떠났다. 고려극장도 둘로 나뉘었다가 1942년 우슈토베로 이전한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 1950년 통합됐다.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만년에 고려극장 수위로 일하며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홍범도’를 지켜보고 1943년에 생을 마쳤다.


1960년대 타슈켄트 예술대와 알마티 연극예술대 졸업생이 대거 입단해 고려극장은 활기를 띠었고 그 전성기가 8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에게 고려극장이 순회공연 오는 날은 명절이고 잔칫날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 등이 독립했다. CIS(독립국가연합) 각국에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카자흐어 등이 공용어로 채택되면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처지가 힘들어졌다. 다시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 지역이나 한국으로 재이주하는 고려인이 적지 않았다. 고려극장도 정부 지원이 끊겨 운영난에 빠졌다. 1991년 알마티에 한국교육원이 문을 열고 이듬해 한국대사관이 개설되면서 고려극장에 숨통이 트였다. 1992년 한국 국립극단과 자매결연해 단원들이 모국 초청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한국 정부와 기업 등의 후원도 이어졌다. 현재 고려극장의 단원은 90여 명이며 연극단, 성악단, 무용단, 사물놀이팀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300편가량 연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한국어 대사를 구사하고 러시아어로 동시통역 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9월이면 고려극장이 창단한 지 85주년,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지 80주년이 된다.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모국과 단절된 채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기고 한국어 교육이 금지된 가운데서도 한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은 집념이 놀랍다.


퀵메뉴
  • 목차보기
  • 퍼가기
  • 인쇄하기
  • 탑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