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 수준에 달하고 이중 근로자는 100만 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들의 본국 송금액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간 1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 고생하면서 번 돈을 조국에 두고 온 가족 친지에게 송금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불과 수십 년 전 한국인 근로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60년대 월남전에서 시작된 해외건설 시장은 태국 등 동남아와 이란을 거쳐 중동(中東) 산유국으로 이동했고 한국의 건설인력도 함께 움직였다. 열사(熱沙)의 땅 건설현장에서 우리 근로자들이 번 외화는 한국 경제성장 신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중동국가들의 한인사회는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터 잡고 대(代)를 이어 사는 전형적인 이민이 아니라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 몰려들었다가 공사가 끝나면 훌훌 떠나버린다. 소수의 자영업자가 터줏대감처럼 한인사회를 지키게 된다. 중동 바레인이 그렇다. 면적 765km2로 서울시보다 조금 큰 정도의 소국이지만 한국의 중동 건설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작지 않다. 현대건설은 1970년대 바레인을 전진기지로 삼아 사우디 동부 담맘 항구 건설공사 인력을 지원했다. 현대가 지은 선박 건조 및 수리시설(드라이독)은 바레인으로서는 대역사였다. 경남기업이 왕궁 공사에 참여했고 대림건설은 일본업체가 수주한 바레인 가스플랜트 공사에 동참했다. 이밖에도 문화청 청사, 바레인걸프대학, 디플로마트호텔, 아랍뱅킹코퍼레이션 본부 등 수도 마나마의 많은 랜드마크가 한국인 근로자들에 의해 지어졌다.
한국과 바레인은 1998년 금융위기로 인해 다음 해 대사관이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사관 폐쇄 즉시 바레인은 북한과 수교했다. 그러나 북한과 관계는 별 진전없이 지금은 북한의 쿠웨이트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2011년 12년간의 공백을 딛고 주바레인 대사관을 재개설했다. 구현모 대사는 홈피 인사말을 통해 “(대사관 폐쇄에도 불구) 한국이 바레인에서 완전히 잊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바레인 사람들은 한국의 자동차, 휴대전화, 첨단 가전 등 한국 상품, K-드라마, K-Pop 등을 통해 한국의 새로운 매력에 눈을 뜨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바레인에 거주하는 한인은 200여 명. 사우디 동부 담맘, 알코바, 다란의 건설 하청사업 한인 종사자 가운데는 가족을 바레인에 두고 양국을 연결하는 교량인 커즈웨이를 통해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상 가스터미널, 정유공장 리모델링 공사에 한국 건설업체가 독자 또는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면서 바레인의 한인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곳 한인사회를 이끄는 주역은 자영업자들로, 호텔, 식당, 부동산 사업을 하는 오한남 씨와 조경사업을 하는 곽희진 씨, 베이커리 업종의 우종태 씨(현 한인회장) 등이다. 이들은 모두 전·현직 한인회장이다. 오한남 전 한인회장은 1983년부터 카타르, 두바이 배구감독에 이어 바레인 국가대표 배구감독을 지냈고 민주평통자문위 중동협의회 부회장, OKTA(세계한인무역협회) 바레인 지회장, 한글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는 등 바레인 한인사회의 산증인이다. 오 전 회장은 “세종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우려는 현지인이 20~30명에서 70~8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한류 영향력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 건설업체가 진출한 중동 시장은 고기술 엔지니어링 분야로 과거의 토목, 주택 건설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을 알려고 하는 현지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