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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올해 1월 30일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독립운동을 도운 대암(大岩) 이태준(1883~1921)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태준은 누구인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몽골에서는 ‘몽골의 슈바이처’로 추앙받고 있다.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 항일 활동을 했고 1911년 중국 난징으로 망명한 뒤 다시 몽골로 이주해 몽골 국왕의 어의로 활약하며 1921년 사망할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세브란스 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담했다. 이태준은 심화하는 일제의 침략과 탄압에 분개하던 차에 중국의 신해혁명(1911년)에 감동했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중국 남경으로 망명한 데 이어 김규식과 함께 몽골로 향했다.


이태준은 몽골 고륜(현재의 울란바타르)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업했다. 당시 몽골인들의 70% 이상이 감염됐던 화류병(매독) 퇴치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태준은 고륜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고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보그드 칸의 어의가 됐으며 당시 외국인에게 수여된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을 받았다.


근대적 의술을 베풀면서 몽골사회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은 선생은 몽골과 중국을 오가는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상해 임시정부로 가는 코민테른 자금 40만 루블 상당의 금괴 운송에 관여한 이태준은 북경에서 의열단 단장인 약산(若山)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해 비밀활동을 지원했다. 우수한 폭탄제조기술자인 헝가리인 마쟈르를 의열단에 소개함으로써 의열단의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도왔다.


그러나 선생은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군 운게른의 부하들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일생을 마감했다. 몽양 여운형은 1921년 가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중 고륜에 체류하게 됐다. 몽골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부르던 고륜의 남산(南山) 건너편 구릉 한복판에 있던 이태준의 묘를 찾아 애도했다.


2001년 7월 선생의 업적을 기념해 국가보훈처와 연세의료원의 재정지원으로 울란바타르 시, 복드칸 산 남쪽 기슭에 ‘이태준 기념공원’을 준공했다. 이어 2010년 공원 내에 이태준 기념관을 개축해 공원은 울란바타르의 명소가 됐다. 주몽골 한국대사관과 한인회, 연세의료원, 몽골 정부 측 인사로 구성된 ‘이태준기념공원 관리위원회가’가 공원의 관리,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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