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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광장

 

유공동포


임천택(에르네스토 임. 1903~1985년) 선생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2살 때 홀어머니 품에 안겨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1천여 명의 한인들은 에네켄(애니깽. 선박용 밧줄의 원료 등으로 쓰이는 선인장과 식물) 농장에 팔려나가 노예와도 같은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임 선생은 18살 때 320여 명의 한인과 함께 더 나은 삶은 찾아 쿠바로 건너갔다. 임 선생을 포함한 쿠바 이민 1세대들은 첫발을 디딘 동부 마나티 항구 마을에서 사탕수수 수확 일을 하다가 1921년 5월 마탄사스로 건너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면서 시 외곽 ‘엘 볼로’ 마을에 한인촌을 형성했다.


엘 볼로에 모여 살던 한인들이 마탄사스 시내로 들어오면서 임 선생의 자택은 1943년부터 1952년까지 마을회관으로서 역할을 했다. 임 선생은 어머니와 함께 유카탄으로 건너와 16년간 한인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친 것이 전부였으나 쿠바에서의 한인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민성학교와 진성학교라는 한글 교육기관을 세워 2세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쿠바 한인들에게 조국의 언어와 풍습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1930년대에는 청년학원과 대한여자애국단 쿠바지부 창설을 주도했다. 임 선생은 마탄사스, 카르데나스 등지에 흩어진 한인지방회를 규합해 ‘재쿠바 한족단’을 결성한 뒤 1934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광복운동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인 회원들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면서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정성을 모았다.


임 선생의 3녀인 마르타 임(79·한국이름 임은희) 여사가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2004년 저술한 ‘쿠바의 한국인들’이라는 책에는 한인 노동자들이 매달 월급의 5%를 독립운동 지원금으로 적립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고국과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쿠바에서도 광복을 위한 후원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임 선생은 1930년 쿠바에 천도교 종리원을 열고 교리사업과 민족혼 심기에 노력했다. 마르타 임 여사는 부친에 대해 “1950~1956년 재쿠바 한인협회장을 지내신 선친은 늘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며 “쿠바에 쌀이 비교적 풍족한 편이었기에 끼니마다 쌀을 한 숟가락씩 모아 그것을 판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임 선생은 1985년 쿠바에서 83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광복 50주년인 1995년 그가 쓴 기록이 공개되자 국가보훈처는 독립자금 모금과 동포의 권익 보호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선생의 유해는 2004년 국내로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임 선생은 부인 김귀희 여사 사이에 9남매를 뒀다. 장남 임은조(1926~2006년, 쿠바명 헤로니모 임)씨는 쿠바 한인 최초로 국립 아바나종합대학을 나왔고 쿠바혁명에 참가한 공로로 공업부 차관과 지방도시의 시장을 지냈고 한인회장으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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