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3월호
특집/기획
화제
인물/역사
칼럼/문학
고국소식
목록보기

칼럼·문학

 

동포문학


내가 살고 있는 치앙마이는 태국 북쪽에 위치한 조용하고 여유로운 도시입니다. 밤새 고양이와 개들의 사투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는 창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운동화를 발꿈치로 눌러 봅니다. 전에 발을 집어넣은 신발 안에서 시커먼 두꺼비가 나온 이 후로 신발 신기전에 내가 꼭 하는 행동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지네, 전갈, 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자연의 도시입니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늘 미소를 지으며 친절합니다. 길을 물어 보면 모른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면서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물어 본 제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알려 준 길이 틀린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정 많은 이곳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순박한 이곳 사람들이 입에 달고 하는 말 ‘마이뺀라이’가 있습니다. ‘마이뺀라이’는 해석하면 ‘괜찮아, 상관없어, That’s okay’ 입니다. 상대의 실수에 미소를 지으며 ‘마이뺀라이’라며 부드러운 성조로 말하는 모습에 많은 외국인들은 마음을 빼앗깁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엉뚱한 ‘마이뺀라이’를 경험합니다.

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대형 마트에서 어떤 아저씨가 뒷걸음치다 제 발을 밟았습니다. 덩치가 꽤 큰 20대 중반의 아저씨였으며, 핫바를 들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저씨가 무서웠는지, 정말 발이 아팠는지 잘 모르겠지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하는 말은 ‘마이뺀라이’ ‘마이뺀라이’ 였습니다.

그걸 들은 저는 “뭐가 괜찮다는거야!” 하면서 더 서럽게 울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상대의 실수에 ‘마이뺀라이’를 외치는 태국 친구들은 자신들의 실수에도 ‘마이뺀라이’를 말합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나온 음식이 주문한 음식과 달라서 물어 보면 ‘마이뺀라이’ 입니다. 심지어 음식이 끝까지 안 나와 물어봐도 ‘마이뺀라이’ 입니다. 식당에 더러운 개가 어슬렁거려서 개를 치워달라고 해도 ‘마이뺀라이’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엄마 차를 후진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 태국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리면서도 처음 한 말도 ‘마이뺀라이’ 입니다. 나와 우리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이뺀라이’는 피해를 본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해야 할 말인데 왜 피해를 준 본인들이 ‘마이뺀라이’ 일까 하면서 태국 국민들의 우유부단하고 허술함을 흉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저도 ‘마이뺀라이’를 말합니다. 이상하게 ‘마이뺀라이’의 따뜻함에 끌립니다. 요즘 내가 이해하기 시작한 ‘마이뺀라이’는 처음 태국에 왔을 때 생각도 못했던 해석으로 다가와 나의 마음을 여유 있게 만듭니다.

접촉 사고를 낸 태국 아주머니는 놀란 상황에서 우리 가족에게 말한 ‘마이뺀라이’는 “이미 사고는 났고 어쩔 수 없잖아, 안 다쳤으니 다행이고 하나씩 풀어가 보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실수한 측에서의 ‘마이뺀라이’가 가슴으로 이해되어지니 태국이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나라의 친구들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몸을 부딪치며 공놀이를 합니다. 친구 발을 모르고 밟은 나는 ‘마이뺀라이’를 외치며 뛰어갑니다. 왜 ‘마이뺀라이’인지 따져 묻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해 줍니다.

폭염과 퍼붓는 스콜, 단수와 정전이 반복되는 이곳의 생활 속에서 ‘마이뺀라이’ 는 좀 더 ‘느긋해 지자’ 라는 주문처럼 나를 달랩니다. 서로 외치는 ‘마이뺀라이’는 실수 앞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구분하지 않고 해결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해자의 ‘마이뺀라이’는 “괜찮아, 오늘 내가 한 실수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자기 자신을 향한 메시지고 피해자의 ‘마이뺀라이’는 “너의 실수지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곳이 더욱 여유롭게 느껴졌습니다. 비합리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던 이 태국의 문화가 정확하고 복잡해서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 박자 쉬어가며 나와 상대를 배려하는 기회를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서로가 ‘마이뺀라이’를 외치게 된 과정에는 그 사람의 실수를 보듬어주고 먼저 ‘마이뺀라이’를 말해주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태국에서의 좋은 추억과 친구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주고받았던 많은 ‘마이뺀라이’들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이곳이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퀵메뉴
  • 목차보기
  • 퍼가기
  • 인쇄하기
  • 탑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