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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에서 1937년은 가장 비극적인 한 해였다. 그해 9월 중일전쟁의 개시와 더불어 연해주에는 여행 금지 조처가 내려졌고, 고려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태워졌다.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 극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 버린 것이다. 고려인 ‘강제이주’가 있은 지 올해로 80년을 맞았다. 1937년 8월 21일 소련 정부는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로 의심된다며 강제이주 명령을 내린다. 군대를 동원해 9월 9일부터 11월까지 고려인 18만여 명을 장장 5천~6천km 떨어진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내쫓았다. 불과 1주일, 또는 2∼3일 전에 통보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강제이주에 앞서 스탈린 비밀경찰은 고려인 지도자 2천500여 명을 체포·처형해 고려인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연해주를 떠난 지 한 달여만에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반(半)사막 지대와 갈대밭 지역에 내던져진 고려인들은 토굴을 파서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났다. 누구의 도움 한번 받지 않고 황무지를 일구느라 많은 고려인이 쓰러져갔다. 당시의 숙청, 기근, 질병 등으로 최대 2만5천 명이 사망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국경 지역 이주 금지를 비롯해 입대 거부 등 차별 대우에도 시달렸다. 또 국가기관 취업 및 취학이 제한됐고, 정계 진출도 봉쇄된 것은 물론 민족학교도 폐쇄됐다. 한국어가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고려인은 좌절하지 않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거듭했다. 황무지를 개간했고, 중앙아시아에 논농사를 전파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 콜호스(집단농장)는 300만 평의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 소련 최고의 모범 농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려인은 농사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각 분야로 진출했다. 무엇보다 자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다. 교사·의사·건축가·엔지니어·법률가·공무원 등 각종 전문 직종에 진출했다. 1989년에는 고려인의 도시 거주 비율이 85%에 달했다. 대학 진학률도 25%를 기록해 소련 내 140개 민족 중에 아르메니아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강제이주 직후 80%에 달하던 농업인구는 12%로 줄고 도시 거주 중간 관리층으로 발돋움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는 고려인의 몰락을 가져왔다. 소련 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만을 구사하던 고려인들은 신생 독립국들이 토착 민족어를 국가 공용어로 선포하면서 고급 전문직과 공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당시 고려인들은 신분 추락을 감수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다시 이주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고, 피땀으로 이룬 터전을 버리고 다시 살길을 찾아 떠났다.


이주를 결심한 고려인들의 대다수가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정했다. 연해주의 대표적인 상업도시인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장 많이 몰렸다. 강제이주에 이어 또 한 번의 이주가 이뤄진 것이다. 연해주는 러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슬라브 문화권이기도 하지만 선조들이 강제이주 전에 거주했던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한인의 연해주 이주 역사는 150년을 넘어선다. 고려인의 연해주 정착 시기는 1863년경으로, 1902년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하와이에 건너가려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 선조보다 39년이나 앞선다. 조선 시대 지배층의 수탈로 살기 어려워진 한인들은 신천지였던 연해주로 몰려들었다.


그 옛날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진 조상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연해주는 항일 독립투쟁의 현장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신흥학교 설립자 이동녕,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 홍범도, 대한제국 장군 출신의 혁명가 이동휘, 국사학자 신채호 등 연해주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연해주의 고려인은 2014년 말 기준 2만9천198명이며 이중 우수리스크에 1만5천여 명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18만2천957명, 카자흐스탄 10만5천400명으로 집계됐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삶에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환갑과 돌, 결혼식, 추석은 중요한 행사로 한민족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당근으로 김치를 담그고, 잔치 국수와 비슷한 ‘국시’, 콩나물 볶음인 ‘질굼채’, 된장과 시래기를 넣고 끓인 국인 ‘시락장무리’ 등을 즐겨 먹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한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고려인과 러시아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재외동포재단 연구사업에 따른 조사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고려인 가운데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비율이 34%에 달하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초급이라는 답은 45%, 중급 13%, 고급 2%로 나타났다.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을 확대해 한민족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시급히 제기된다. 올해 중앙아시아, 연해주, 국내 거주 고려인들은 강제이주 80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인명록 발간, 갈라쇼, 영화제를, 3천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국내 광주광역시 고려인 마을에서도 강제이주 사진전, 학술포럼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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