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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동포





“진정한 영웅은 사후에 더 유명해지고 평가받는 법이다.” 김영옥 대령(1919~2005)이 그렇다. 2007년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세계한인회장대회가 열린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 전 세계에서 모인 한인회장들은 미주 한인 2세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김영옥 대령을 한인회의 ‘롤 모델’로 삼자는 의견을 냈다. 대회 토론회에서 장태한 미국 UC리버사이드대학 교수는 “세계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전쟁영웅’인 김영옥 대령은 한인회와 동포 2, 3세의 훌륭한 역할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유명 포털사이트 엠에스엔닷컴(msn.com)은 2007년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미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하면서 김 대령을 포함했다. msn은 김 대령에 대해 “2차 대전에 참전하고 예편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재입대했고, 한국전쟁 당시 한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통역장교가 되는 대신 보병부대에 들어갔다”고 ‘참군인’의 면모를 소개했다. 2010년 미주 한인사회를 연구하는 최초의 연구소가 UC리버사이드 캠퍼스 내에 설립되어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로 명명됐다. 2009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인의 이름을 딴 중학교 ‘김영옥중학교’도 LA에 문을 열었다.


김영옥은 LA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김순권 선생은 독립운동가였고 누나인 윌라 김은 뮤지컬 의상디자이너로 토니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프랑스 전선에 투입,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공을 세웠고 미 특별무공훈장과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을 받았다. 6·25가 터지자 자원입대해 중부전선에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으로 능력을 드러냈다. 전쟁 와중에서 500여 명의 전쟁고아를 돌봤다. 1960년대 한국군 군사고문 시절에는 한국 방어 계획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부대를 창설했다. 김영옥이 영웅으로 평가받는 것은 전선에서의 뛰어난 공로뿐 아니라 인도주의 활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1972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미국 정·재계의 영입 유혹을 물리치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 장애인, 노인, 청소년, 입양인,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했다.


노령과 건강악화에도 불구,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조사위원회에 참여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한국전쟁 때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평생 따라다닌 고통도 그의 봉사 정신을 가로막지 못했다. 2005년 숨진 김영옥 대령은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에 묻혔다. 김 대령의 생애는 재미 전기작가 한우성 씨가 일대기 ‘영웅 김영옥’을 펴내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1년 김영옥 대령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렸고 군에서도 신임 장교들에게 그의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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