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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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사회의 구심점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1946년생으로 민단과 동갑내기인 오공태 단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동포 2세인 그는 “민족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재일동포로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온 민단이 70주년을 맞아 감회가 새롭습니다. 재일동포 사회의 구심점인 민단은 일본의 외국인 차별 정책에 맞서 차근차근 권리를 쟁취해왔고, 친북 단체인 총련과의 대결 등으로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숨 가쁘게 달려온 70년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민단 단장은 초대 박열 단장부터 오공태 단장까지 48대에 이른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박열은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활동을 하다 천황 암살 미수로 22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출소 후 초대 민단 단장에 취임해 활동하지만, 조직 내부의 세력 갈등에 밀려나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가 6·25 동란으로 납북되어 잠시 활동을 보인 뒤 현재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잠들어 있다. 그의 질곡 어린 생애는 어쩌면 민단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암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인회 대신 민단이란 명칭을 가진 점, 남북한 분단에 따른 조총련과의 대립, 주재국 차별 대우 등은 재일동포 사회가 처해온 남다른 환경과 시련을 말해준다. 그러나 재일동포의 역사는 조국에 기여한 대목에서 단연 돋보인다. 중국의 경제발전 이면에 화교 자본이 있듯이 한국경제가 두 발로 서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까지 민단의 도움이 컸다.


 재일동포 기업인 서갑호(1915~1976) 스토리는 뿌듯함과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일본에서 방적 사업으로 부호가 된 그는 1962년 8월 도쿄 시내에 자신이 소유한 땅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했다. 현재 주일한국대사관이 들어선 부지는 메이지유신 때 일본 총리가 살던 노른자위 땅으로 땅값이 조 단위에 이른다. 영사관 등 일본 내 10개 공관 가운데 9개의 부지와 건물이 동포들의 기금과 모금운동으로 마련됐다. 1950년 6·25가 터졌을 때는 조국을 구하겠다며 일본에 유학하던 고교생 대학생 642명이 학도의용군에 자원입대했고 전사자가 135명에 이른다. 1963년에는 재일동포들이 산업은행을 통해 조국에 100만 달러를 보냈다. 당시 한국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1천만 달러였고 실제 쓸 수 있는 외화는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국내 최초 수출전용 산업단지인 구로공업단지는 순전히 재일동포의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88올림픽 때는 100억 엔을 보냈고 이 돈으로 각종 올림픽경기장과 대한체육회 건물을 지었다.


IMF 때도 재일동포들은 20억 달러 규모의 성금을 모아 조국에 보냈다. 전 국민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액수가 19억9천만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이 재일동포들이었다. 재일동포들의 조국애가 유별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분단의 아픔과 현지 차별대우를 겪으면서 조국 사랑의 심정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재일동포들의 도움이 이렇게 컸음에도 국내 교과서에 한 줄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단 앞에 가로놓은 숙제는 귀화자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차세대의 한민족 정체성 확립, ‘헤이트스피치’(혐한시위) 대처, 지방 참정권 확보, 1980년대 이후 일본에 진출한 ‘뉴커머’와의 융화 등 한둘이 아니다. 재일동포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눈앞의 현안들을 풀어가는 첫 작업이라고 본다. 재일동포들이 조국에 기여한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그들에게 존재감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으로의 이민 역사는 한국의 근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884년 갑신정변을 전후해 고베, 요코하마 및 도쿄에 조선인 거주가 확인된다. 이주는 조선이 일본에 강점되는 19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1916년까지 1만 명 이내였던 일본 내 조선인은 1920년 4만 명에 달하고 이들은 탄광이나 도시 건설 시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지식인들의 일본 유학도 본격화됐다.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에 의해 집단으로 학살되는 비극을 겪었다. 1930년대에는 조선인의 일본 이민이 사실상 성숙기에 들어가 1938년에는 80만 명을 넘어섰고 80%가 가족 단위 이민자로 재일조선인 이민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1945년 일제가 패망했을 당시 여러 이유로 귀국선을 타지 못하고 일본에 체류하게 된 한인들은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권리 보장에 나섰고 1946년 10월 3일 민단 출범이 이뤄졌다. 외교부의 2014년 말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 사는 동포는 85만5천725명으로, 전 세계 720만 동포의 약 11.91%를 차지한다. 이는 2년 전보다 4.19% 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이 가운데 일본으로 귀화한 동포는 35만5천274명(41.52%)이다.


현재 민단은 중앙본부 아래 6개 지방협의회와 산하 지방본부를 두고 있다. 또 부인회, 상공회의소, 청년회, 체육회, 학도의용군지회, 학생회, 과학기술협회 등을 거느리고 있고 기관지 민단신문과 도쿄한국학교, 오사카백두학원, 오사카금강학원, 교토(京都)국제학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민단은 5월 16일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인천·울산·대구·대전·광주·제주 등지를 돌며 9월 초까지 ‘재일동포 110년과 민단 70년의 발걸음’이란 주제의 사진전을 열었다. 10월 21일에는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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