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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차세대


"형사부 검사로서 음주 운전부터 가정폭력, 성폭행, 살인까지 사회의 온갖 어두운 면을 접하며 살죠.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제가 한국계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캐나다인보다 민감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6년 차 검사인 이진아(31) 씨는 10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년 시절에는 내가 한인 2세라는 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오히려 얻은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씨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재외 한인 2세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공적으로 주류 사회로 진출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캐나다 명문대 중 하나인 맥마스터대 생화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전혀 새로운 분야인 로스쿨로 다시 뛰어들어 2011년 검사실로 입성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한인 2세라는 배경은 ‘숙제’가 되기도 했고 ‘선물’이 되기도 했다.




이 씨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권자로, 이민 1세대인 조부모, 1.5세대인 부모와 함께 3대가 어울려 사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컸다. 사춘기 시절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마음 한쪽에 답답함을 안고 살았죠.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마 정체성 혼란 때문이었나 봐요. 집안에서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지내다가 학교에 가면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맞춰야 했거든요. 그렇지 못하면 왕따가 될까 봐 걱정도 했죠. 그래서인지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하고, 집에 오면 가족이 불편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이러한 고민은 2003년 대학에 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풀렸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새로운 상황과 부딪히게 되면서 성숙함을 배우게 됐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가 학부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하며 의사가 되기를 꿈꾼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해 이민 1세대는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맨손으로 가정을 지키셔야 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한인 어르신들은 무척 정이 많으세요. 과학을 공부하는 게 무척 재밌기도 했고, 아픈 어린이를 돕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생화학을 택했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진로를 로스쿨로 바꿨다. “법을 공부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09∼2011년 토론토의 오스굿 홀 로스쿨에 다니면서도 아동 성 착취 반대 단체 ‘ECPAT’ 등에서 법률 인턴을 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아닌 검사를 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캐나다에서는 검사의 역할이 한국과는 조금 다를 거에요. ‘크라운 어토니’(Crown Attorneys)라고 불리는데,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 측 변호사’라고 볼 수 있어요. 경찰이 제출한 증거를 검토해 피의자를 기소할지를 결정하는데, 범죄자의 혐의를 입증하기도 하지만 피의자가 무고한 경우엔 결백을 입증하는 일도 중요해요. 진실을 찾는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씨는 특히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해자, 피해자, 증인 등 여러 사람을 접해야 하는데, 검사로서 이민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토의 한인 노인 지원 시설인 ‘아리랑시니어센터’에서도 이사로 참여해 법률 상담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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