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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문학


여름이 되면 나와 동생은 방학을 보내러 한국으로 간다. 선택이 아니라 마치 의무처럼 일상화된 일이다. 가족들을 만나고 모국인 한국을 잊지 않기 위해 1년에 최소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좀 달랐다. 짧은 겨울 방학, 봄 방학 그리고 중국의 연휴에도 우리 가족은 여행 대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유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4월 어느 목요일 밤이었다. 우리 집 국제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몇 달 간격으로 어쩌다가 울리는 전화기였다. 엄마는 한국에 자주 전화를 걸기에 반대로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뭔가 불안한 벨 소리는 나의 잠기운을 모두 날려버렸다. “따르릉~! 따르릉~!” 나는 허겁지겁 엄마한테 달려가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화장을 지우는 엄마대신 아빠가 전화를 받으셨다.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는데 약 몇 초 동안 말없이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갔다. 전화를 끊자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빠는 엄마와 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오늘을 넘기기 힘드시데…”

난 아빠가 너무나도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보다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사실 위독하다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것이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는 의미임을 깨닫고 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와 동생은 한국을 간다는 사실만으로 좋아했지만 내 가슴 한 구석은 끊임없이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는 최대한 빨리 짐을 챙겼고, 나는 눈을 붙이기 위해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계속 기도했다. 할아버지가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잘 버텨달라고…. 다음날 새벽 6시 쯤 우리 가족은 상하이 공항으로 향했다. 차에서도 내내 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생을 보며 아직도 어린 아기라고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 후 차 트렁크에서 짐을 빼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우린 재빨리 비행기가 어느 게이트에서 떠나는지 확인을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걱정으로 종종 거린 우리는 어느새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과 중국의 상하이는 너무도 다른 듯하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공기의 질이다. 중국은 스모그가 너무 심해서 하늘이 가끔씩 회색이나 혹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 미세먼지다. 반면에 아침의 한국 공기는 너무나 깨끗했다. 공항에 있는 표시판의 한글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읽어 내려가며 여기가 한국임을 실감했다. 항상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섰던 공항을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설 줄 몰랐다. 나가자마자 우린 반가운 마음으로 삼촌을 만났지만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빨리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유리창으로 보이는 광경만 바라볼 뿐….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고 옆에 있는 기계는 할아버지의 심장박동수를 측정하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너무나 초췌한 모습.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었나 싶은 얼굴. 형광색처럼 너무나도 하얀 핏기 없는 얼굴, 너무 낯설어서 오히려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생명이 위독한 할아버지의 누워 계신 모습과 옆에서 바라보는 초조한 시선들, 심장박동수를 재는 기계의 그래프….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숨 가쁜 할아버지의 숨소리. 항상 나를 보면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던 그 따사로운 눈길을 느낄 수 없었다. 무엇이든 내편을 들어주고, 빵을 서랍에 보관했다가 내게 꺼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 찾아볼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식사 대신으로 간단하게 빵을 먹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기계가 이상한 ‘삑… 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난 재빨리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손을 잡았고, 아빠도 나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고모는 부리나케 의사를 불렀고 할머니는 점점 커지는 소리로 기도문을 외우셨다.

의사가 와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단지 기계의 전선 접촉 불량이라고 말한 후 나가셨다. 우리는 다 같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할머니는 장남인 아버지와 장손인 내가 올 때까지 제발 할아버지가 버텨달라고 밤새 기도하셨다했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해서 약 1시간이 흘렀을 때 의식이 약간이라도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했고 식구들 모두가 다했다 싶었을 때 난 아버지와 함께 다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할아버지 옆에 있던 기계가 다시 ‘삐… 삐…’ 거렸는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의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심박동수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소리 높여 부르며 할아버지께로 달려왔다. 난 참았던 눈물을 다 흘려보냈다. 고여 있던 물이 출구를 찾으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처럼 나의 눈물은 거센 강과 같이 흘러 내렸다. 순간 내 머리 속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와의 기억, 잊지 못할 추억,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할아버지라는 존재. 솔직히 난 할아버지와 지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할아버지는 항상 해외에서의 나의 건강을 염려하셨다. 그리고 나의 외국생활과 내가 다니는 국제학교의 친구에 대해 궁금증이 많으셨다. 그러나 난 할아버지에게 따뜻하고 정 많은 손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남자지만 난 너무 무뚝뚝한 아이였다. 할아버지께 잘 대해드리지 못하고 많은 얘기를 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또 하나의 스쳐가는 장면도 있었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중국에 오셨는데 나에게 달리는 방법,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어렸던 나는 자라 중학생이 되고, 그런 건강하고 젊었던 할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더 이상 묻지 못하시고 힘없이 눈을 감으신 것이다. 나에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할아버지를 나는 이렇게 잃게 되었다. ‘할아버지, 우리 학교에는 외국 애들이 많아서 영어로 수업을 해요. 학교 운동장이 대학교처럼 크고요. 우리는 시간표대로 책을 들고 교실로 수업을 들으러 가요. 공부를 못한다고 때리거나 벌을 주지는 않지만 뭔가를 잘못하면 교장실에 반성하러 가요. 놀라시겠지만 중학생부터 댄스파티가 있어서 드레스 입은 여자애들과 부둥켜안고 춤도 춰요…’ 나는 장례식장에서 혼잣말을 했지만 할아버지의 깜짝 놀라시는 표정과 재밌어하시는 표정이 허공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국으로 돌아온 나는 국제전화가 걸려왔던 그 수화기를 들어보았다. 평상시에는 계시다는 것을 잘 못느끼던 존재였는데 막상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할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눌러 보았다. 바다 건너 할아버지를 찾는 전화를 해도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중국과 한국의 어느 허공에서 신호음만 안타깝게 할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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