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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치앙마이 전 지역에 살고 있는 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안건은 ‘화전으로 인한 공기오염과 그 대비책’이다. 태국의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해발 400미터의 분지이다. 이곳에는 치앙마이 인구의 상당수에 달하는 화전민들이 산 속에서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치앙마이의 날씨는 비가 많이 오고 온도가 매우 높은, 즉 사회시간에 배운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알려져 있다. 산속에 있는 땅들은 많은 비와 높은 온도의 영향으로 땅 속의 영양분은 거의 씻겨 내려가고, 유기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붉은색 철 성분만 많이 남아있는 적색토가 대부분이어서, 그러한 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산 속에 살고 있는 농민들은 하는 수 없이 매년 2월과 3월이 되면, 나무, 풀, 숲 등을 태워서, 그 때 생긴 유기물을 이용하여 농사짓기 좋은 땅으로 다시 일군다.

올해도 어김없이 2월부터 농민들의 화전이 시작되었고, 분지여서 사방이 막힌 치앙마이에 살고 있는 뱀들은 화염과 연기, 그리고 바람과 함께 실려 오는 검은 먼지들로 눈도 따갑고, 목도 매일 붓는다.

알에서 막 깨어난 자신들의 어린 새끼들이 잘게 부숴준 지렁이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꿈틀대다가 기절을 하는 일이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치앙마이 나이트 사파리 근처 뱀 병원 응급실에는 연기에 질식된 뱀, 피부가 화염에 그슬린 뱀, 알 수 없는 두통과 복통, 구토에 시달리는 뱀 환자들이 하루에 수십 마리씩 북새통을 이룬다.

인간의 정력에 좋아서 가장 비싸게 팔려 가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던 흰색 뱀은, 연기로 검게 그을려서 이젠 싸구려 지갑조차도 만들 수 없게 된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한숨을 지었다.

맹독을 무기로 위엄을 과시하던 검푸른 독사는, 입안에서 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품만 줄줄 흐른다고 하소연을 했다.

배로 기어 다니는 다른 뱀들과는 달리 언제나 당당히 몸의 절반가량을 꼿꼿이 세우며 인간들을 눈빛으로 제압하던 코브라는, 어느 몰지각한 공장의 폐기물이 타면서 내뿜은 유독가스로 인해 척추가 마비되어 더 이상 몸을 세우지 못해, 다른 뱀들처럼 배로 기는 신세가 되어서 척추치료와 우울증 치료를 함께 병행한다고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가늘고 긴 초록색 뱀은, 검은 먼지로 인해 나뭇가지와 전깃줄의 색깔이 비슷해진 것을 모르고, 새를 잡아먹기 위해 나뭇가지로 착각한 전깃줄에 몸을 감다가 그만 감전이 되어 전신 2도의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그나마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자전거 바퀴처럼 보이는 검은색 뱀은 어느 날 앞에서 달려오는 인간의 자동차 바퀴를 미처 피하지 못해 꼬리 부분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여생을 장애 뱀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울먹거렸다.

뱀 중에서 제일 게으른 누런 색 뱀은 긴 구멍이 집인데, 아직 동면에서 깨기도 전에 덮친 화염과 연기로 집의 출입구가 막혀 질식사할 뻔 했다고 한다.

뱀 병원 1층 응급실 복도 끝에서 간호를 위해 함께 온 가족 뱀들이 대책 회의를 열었다. 위원장은 척추를 다친 코브라의 할아버지로 정해졌다. 젊은 뱀들은 가장 오래 사신 코브라 할아버지를 어르신으로 모시고, 그분의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말씀에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귀를 세웠다. 코브라 어르신의 목소리는 차분하며 점잖았고, 오랜 경험으로 연륜이 묻어 나와 다른 젊은 뱀들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코브라 어르신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나는 수십 년을 화전을 하는 인간들을 보아왔다. 30년 전, 20년 전, 10년 전….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매년 행해지는 인간들의 화전을 당연한 것들로 받아들이며 큰 문제없이 잘 살아왔지, 아니 오히려 인간들이 풀과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들이 땅 속 깊이 들어가면 땅이 기름지고, 영양분이 많아져서 우리 같은 뱀들은 먹을 것이 더 많아져서 덕을 보기도 했지. 사실 나는 마른 나뭇잎 타는 냄새를 은근히 즐기기까지 했었어. 구수하고,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 허허.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무 타는 냄새, 풀 타는 냄새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갑자기 치앙마이가 변하기 시작했어. 거리는 자동차 꽁무니에서 나오는 가스로 오염되기 시작했고, 산 속에 몰래 버려지는 각종 공장 폐기물들은 화전민들이 태우는 연기 속에서 몰래 태워지다가, 결국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 농민들의 가슴을 더 까맣게 태우고 말더라고. 그뿐 아닐세. 치앙마이에 사는 태국인들의 폐암환자가 최근 갑자기 증가했다는 말도 있어! 사실 우리가 인간들 걱정하려고 지금 이렇게 모인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편해야 우리 같은 뱀들도 신경 쓰는 일들이 줄어들지….”

어르신 뱀의 말씀이 끝나갈 무렵 개구리를 주식으로 하는 검은 뱀이 그 다음 말을 이어갔다. “땅 속도 땅 위도 공중조차도 안전한 곳은 없네요. 어르신,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나뭇가지를 날렵하게 오가며 새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초록 뱀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뱀들도 도이인타논 같은 공기 좋은 곳으로 모두 이사를 가면 안될까요? 태국의 왕비를 모신 아주 커다란 사찰이 있는 곳 뒤에 엄청 큰 산이 있어요. 그곳은 화전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겪은 이러한 사고도 없고, 또 먹을 것도 많을 거예요.”

“모르는 소리” 어르신 뱀은 꼿꼿이 세웠던 몸통을 다른 뱀들처럼 내리고, 초록 뱀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도이인타논에 가면 우리 뱀들은 모두 인간들에게 잡혀서 뱀술이 되거나, 흰 뱀 같은 경우는 다른 나라로 팔려 가거나 할 걸세.”

모든 뱀들은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세타령은 그만 하고, 우리 상황에 맞는 회의를 해요.” 가장 어린 푸른 색 뱀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자 코브라 어르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그 날 회의를 마쳤다.

“우리 뱀들에겐 정해진 자리가 있지. 그 자리를 이탈하면 위험한 일도 함께 생기는 법. 벌레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초록 뱀은 나무 위 새 집까지 몰래 들어가서 어린 새를 낼름 잡아먹는 행동을 지금부터 금하고, 개구리만을 편식하던 검은 뱀은 지렁이나 죽은 도마뱀 등으로 식탐을 줄이고, 게으른 누런 뱀은 이 기회에 아예 다이어트를 좀 해서 살도 빼고, 푸른 뱀은 파리나 모기, 메뚜기 같은 것으로 식단을 다시 짜고, 피부관리에 엄청 예민한 흰 뱀은 아예 채식으로 한번 바꾸면 좋겠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들은 양심 없는 인간들이 쓰레기를 산 속에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겠네.”

치앙마이 뱀들은 인간들을 원망만 하지 않았다. 자꾸 변해가는 세상, 욕심으로 화를 부른 세상 속에서도 자신들에게서 먼저 문제를 찾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실천해 가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치앙마이 뱀들의 회의는 일단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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