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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코리안


미국 워싱턴주에서 40여년간 대한부인회를 이끌어온 설자 워닉(74) 씨가 8월 24∼26일 제주에서 열린 제16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대회에 발제자로 초청돼 모국을 찾았다. 미국에서 대한부인회가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워닉 씨의 일생을 바친 헌신 덕분이었다. 워닉 씨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76년이다. 앞서 그는 한국에 미군 장교로 왔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무역회사 직원으로 온 남편과 사랑에 빠져 1968년 결혼을 했다. 미국의 명문 유대인 집안 출신인 남편의 설득에 넘어가 이민을 택했지만, 그는 처음 밟은 미국 땅에서 적지않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우선 미국 사회에 대해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무급으로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고, 이후 시애틀에 있는 대학교에서 정식 코스를 밟아 20개월 만에 미국 교사 자격증을 땄다. 정식 교사가 된 그는 다시 학교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인 여성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내가 80년대 초에 타코마 카운티 복지국에 이사로 들어가게 돼 6년간 일했습니다. 거기서 미국에 다양한 복지기금, 보조금(grant)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워닉 씨는 카운티 당국에 노인 복지 보조금을 신청해 3만5천 달러를 처음으로 받았다. 그 돈으로 대한부인회에서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시작했고, 가난한 노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추가로 15만 달러를 받아내 간병 서비스까지 확대했다. 노인 간병 서비스는 대한부인회의 최대 복지사업이 됐다. 현재 대한부인회가 12곳에서 운영하는 노인 돌봄 센터는 300여명의 직원과 1천여명의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 민족으로서 한국인의 입지를 넓히고 다문화 가치를 실현하는 데 몸 바쳐온 그는 “한국이 저출산, 초고령사회로 가면서 나라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데, 좋든 싫든 이민자를 받아들여야죠. 지금부터 다문화정책을 제대로 세워서 그들을 순조롭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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