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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에게 영어란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와도 같아 보인다. 그저 간신히 몸짓, 손짓 섞어 의사를 소통하는 수준의 영어에서부터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세련된 고급 영어까지 그 표현 방법 또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적당히 섞어 쓰는 부사, 형용사가 말하는 사람의 격을 가늠케도 한다. 캐나다는 대표적인 이민자의 나라다. 같은 라틴어의 뿌리를 둔 언어를 쓰는 동유럽 국가나 한때 미국,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필리핀, 인도, 홍콩 이민자들에게는 영어가 우리처럼 생소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스펠링, 문법 제쳐 놓고 잘도 떠들어 댄다. 우리가 최소 6년, 길게는 10년 이상 배운 영어가 그들 길거리 영어만도 못한가 싶어 가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입에 익지 않은 말을 하려니 문장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입 밖으로 내려고 궁리하는 동안 대화의 주제가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나이 들어 이민 온 사람들에게야 고급, 저급 따질 것 없이 의사만 소통하면 그만이지만 그것도 그리 간단치가 않은 모양이다. 이민 온 지 50여 년이 다 되어가건만 전화로 피자 한 판 주문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처럼 나이 들어 이민 온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까닭 모르고 부모 손에 끌려 삶의 터를 옮긴 어린 학생들이 교실에서 영어 때문에 겪어야 할 처절한 노력은 정말 처절할 수밖에 없다. 23년 전 고국에서 14살로 중학교 2학년 1학기에 적을 두었던 딸아이의 새 땅에서의 학창 생활은 영어와의 전쟁이었다. 새 땅에 터를 잡고 집 근처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자 아이가 곧잘 학교에 적응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방에서 얕은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아이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내가 가슴을 열어 보이자 와락 내게 쓰러지며 눈물을 쏟아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아이의 등을 쓸어주기 시작하자 몇 번 어깨를 들썩이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의 터진 입술 하며 눈물로 얼룩진 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있었다. 아이의 책상 위를 살펴보니 두고 온 고국 친구들 사진 옆으로 ‘허클베리의 모험’이란 얇은 단행본 책이 펼쳐져 있었다. 지난 2주일을 그 책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이해력을 테스트하는 Q&A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질문이 20여 개 정도 되었는데 예를 들면 ‘톰은 왜 계모에게 매를 맞았는가?’ 하는 식이었다. 그러자니 그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는 20문제 답을 쓸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사전을 뒤져가며 50여 페이지쯤 되는 책을 읽어 내려갔다. ESL 학생들 수준의 영어책이라 쉬운 영어였겠지만 내겐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창밖이 밝아오고 대충 정리를 마칠 떼쯤 아이가 침대에서 눈을 비비며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자기 숙제를 밤새워 해준 걸 알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새 이민자들 대부분이 개인 교습을 받아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곤 하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한 무능한 부모로서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몸으로 때우는 길밖에 없었다. 그 숙제 사건 이후 아이는 내 실력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내게 물어 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날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딸을 실망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했지만 배우고자 하는 아이에게 다른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당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틈틈이 아이의 책을 빌려 앞으로 배울 과제를 예습하고 아이에게 가르칠 방법을 연구했다. 영어로 된 책을 내가 자습해서 이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르치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학년을 올라갈수록 문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그만큼 내가 공부하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암기 과목이야 열심히 외우면 되었지만 문제는 영어와 수학이었다. 내게 힘이 부치는 문제는 가게를 들르는 손님들을 붙잡아 알아내곤 했다.

아이는 나와 함께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건만 점수는 신통치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을 해야 하는데 영어 중간고사 성적이 기대 이하라서 유급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나는 영어선생과 약속을 잡고 학교 사무실로 찾았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 선생도 서두를 일이 아니라며 유급을 권했다. 나는 남은 기간 딸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겠노라 간절히 부탁했다. 나는 아이의 성적보다 유급으로 인해 상처받을 아이의 여린 감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여선생도 내 뜻을 아는 듯 안쓰럽다는 듯 날 바라보며 한 가지 제안했다. 앞으로 남은 6개월간의 커리큘럼을 보여 줄 테니 준비 잘해서 2학기 점수를 올리면 생각해 보겠노라 했다.

그러겠노라 약속을 했지만 졸업반 영어란 게 역시 만만치 않았다. 환경, 시사, 취업 등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실무적인 과제는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켄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란 책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문체 자체가 난해했다. 생각 끝에 고국의 친구에게 부탁하여 한글 번역판을 배송받았다. 그 책을 다 읽어 줄거리를 이해한 다음 원서를 읽으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독후감을 작성하고 질문에 답하여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회복해 나아갔다.

난생처음 하는 장사라는 게 몸에 익지도 않고 이런저런 속상한 일도 많은데 책 놓은 지 20년이 넘는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저녁 10시까지 내 자습 시간이고 그때부터 새벽까지 두 시까지가 아이의 가정 수업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귀찮은 생각에 중간에 접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책과 필기도구를 들고 식탁에 똬리를 틀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을 하는데 통증이 점점 심해져 왔다. 나는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의사가 이런 지경까지 어떻게 참았느냐며 나를 수술실로 집어넣었다. 급성 맹장염이라 시간을 다투는 수술이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자기 공부 때문이라고 자책해댔지만 난 그런 아이가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사실 공부를 가르치며 난 답답한 맘에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많이 했었고 책도 집어 던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책을 들고 부모를 찾는 아이를 누구라서 내칠 수 있겠는가?

아이는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식 날, 아이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거나 마찬가지라 했지만 난 좋아 날뛰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지난 어려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밀고 있었다. 30 중반의 나이를 지나는 아이의 가정 수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젠 학교 공부보다 더 소중한 인생 수업이다. 우린 책방을 뒤져 픽션, 논픽션 가리지 않고 책을 사서 돌려가며 읽고 독후감을 나눈다. 이젠 내가 아이에게 배우는 입장이 바뀌었지만 뒤뜰로 난 산책길을 따라 단풍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걸으며 아이와 함께하는 인생 수업시간이 내겐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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