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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통신원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190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에 세운 최초의 한인촌인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가 사적지(Historic Site)로 지정된다. 리버사이드 시 문화위원회는 6월 15일 시의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도산 선생이 건립한 파차파 캠프를 사적지로 지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회의에는 홍명기 미주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총회장과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소장 등 한인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리버사이드 시의회는 7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사적지 지정을 최종 승인하고, 8월 15일 파차파 캠프가 건립된 장소에서 기념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장태한 소장은 “파차파 캠프 부지를 사적지로 지정하기 위해 지난해 리버사이드 시청에 신청했다”면서 “현재 땅 소유자는 가스회사 등 2곳으로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장 소장은 “이번 파차파 캠프 사적지 지정은 미국에서 최초의 한인촌이 리버사이드에서 건립됐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소장은 파차파 캠프 사적지 지정을 위해 리버사이드 시에 자신이 작성한 ‘파차파 캠프: 미국 첫 한인촌’ 논문과 각종 자료를 제출하는 노력을 펼쳐왔다. 그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1902년 12월 7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 게재된 도산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리버사이드 시 다운타운에 있던 파차파 캠프는 당시 한인 10여 가족 50여 명이 거주한 판자촌이었다. 장 소장은 “1902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미국에 건너온 도산 선생은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동부 리버사이드로 이주한다”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 소장에 따르면 리버사이드에서는 오렌지 농업이 성해 한인들이 인부로 많이 고용됐다. 도산은 이곳에서 한인공동체인 파차파 캠프를 조성했다. 1911년 파차파 캠프를 방문한 강명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은 이곳을 ‘도산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장 소장은 “도산 선생은 이곳에서 신민회와 흥사단 조직을 구상했다”며 “미국 내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바로 리버사이드인 셈"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또 “도산 선생이 행동하는 지도자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8월 리버사이드 시청 앞 광장에 있는 도산 기념 동상을 오렌지를 수확하는 모습으로 재단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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