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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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땅에 처음 이주한 한인은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전성화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는 독립군의 길 안내 역할을 하다가 구속 수감된 그는 출감 이후 중국을 거쳐 홍콩으로 들어가 몇 년 지낸 후 1932년부터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서 거주하게 됐다. 1937년 하이퐁에는 전성화 가족을 비롯해 3세대가 살았으며, 무역업이나 인삼장사를 했다. 베트남 남부의 사이공(현 호찌민)에도 인삼을 거래하는 한인이 일찍이 진출한 것으로 추측되며 최초로 이주가 확인된 한인은 무역업을 하던 김상률이다. 일본이 패전하기 전 하노이에 100여 명, 호찌민에 2천 명의 한인이 있었으나 일본 패전 후 급격히 줄어 1950년대에는 36명, 1962년에는 42명의 한인이 주로 호찌민 지역에 잔류했다. 베트남 한인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면서부터였다.


 1966년 42세대 164명의 한인이 대부분 호찌민에 거주했고 미군 군무원, 납품업자, 식당 및 식품업, 무역업 등에 종사했다. 이들은 현재 베트남 한인의 1세대로 ‘원로’라 불리고 있다. 1965년 전쟁 와중에서 호찌민한인회가 발족했다. 한인의 이주가 본격화된 것은 냉전이 붕괴하고 한국과 베트남이 다시 국교를 정상화한 1992년 12월부터이다. 대우, 포스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을 비롯해 신발, 섬유, 의류 업종의 중소제조업자들이 진출하면서 호찌민에 상사 주재원 등 2천여 명의 한인이 있었다. 이들의 사업 성공으로 추가 진출이 이뤄져 1996년 호찌민에 거주하는 한인이 5천 명을 넘어섰다. IMF 사태로 대기업의 투자는 감소했지만, 호찌민의 경우 섬유, 봉제 등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의 투자가 꾸준히 늘어났고 식당, 여행, 숙박업 등 일부 자영업자 숫자도 함께 증가했다. 베트남 교민은 특히 2003년부터 시작된 제2차 베트남 투자붐을 타고 급격히 늘었다.


하노이와 호찌민한인회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 거주 한인 규모는 남부(호찌민시) 10만, 북부(하노이시) 5만 명으로 15만 명 규모이다. 외교부 집계가 2014년 말 기준으로 10만8천850명인 것과 비교하면 베트남 거주 한인의 가파른 증가세를 읽을 수 있다. 하노이는 수교 당시 교민이 100여 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5만여 명에 달한다.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은 4천500여 개로 베트남 투자 1위 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하노이한인회는 대기업 지사장이나 법인장이 중심이 되어 태동, 현재 고상구 씨가 10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호찌민한인회는 1981년 활동을 중지했다가 1996년 재출범해 현재는 13대 김규 회장이 한인회를 대표하고 있다. 하노이한인회는 작년에 세계한인회장 대회 참석자 투표를 통해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와 함께 최우수 한인회로 선정됐다.


교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활동을 펼친 모범사례로 뽑혔으며 특히 ‘119 긴급 콜센터’를 설치해 교민 안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24시간 운영되는 ‘119 콜센터’는 불의의 교통사고나 위급한 상황으로 병원에 가야 할 때 긴급 호송을 지원하고 현지 병원에서의 통역과 입원 절차상의 문제 등을 지원한다. 이밖에 대사관 영사부 민원실 자원봉사 지원과 교민을 위한 20여 개의 문화강좌 개설, 한인 도서관 운영, 베트남 불우이웃돕기 등의 공익적인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작년 4월 11일에는 ‘제1회 하노이 한·베축제’가 하노이한인회와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주최로 하노이 꿘응아 광장에서 개최되어 다문화 시대를 맞아 양국 간 우정을 다지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행사에는 6만여 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한국인들이 해외 생활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자녀 교육도 베트남에서는 별문제가 없다. 2000년만 해도 하노이에는 한국학교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호찌민과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 각각 1천300명, 1천 명의 학생이 있다. 학교 설립과정에서 현지 진출 기업의 기부금과 한인의 찬조가 밑바탕이 되어 자녀 교육에 대한 한인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하노이한인회는 ‘교민카드 발행’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교민 정보수집을 통해 바이러스, 테러 등 긴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해 위기에 대처하는 한편 위급 상황 시 여권 없이도 신분 확인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고 카드 가맹점을 통한 할인서비스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호찌민한인회는 교민이 사고사를 당했을 때 한국식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 한국에서 급보를 받고 달려오는 가족 친지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다.


베트남 얘기를 하면서 ‘한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된 한류는 처음 베트남에서 출발했다. 1997년 한국드라마 ‘느낌’과 ‘금잔화’가 호찌민 TV에 첫 방영 됨으로써 한국드라마가 베트남에 소개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베트남은 한류의 진원지로 여전히 친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한류 열풍은 최고조를 지나 조금 시들해지는 상황이다. 2년 전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베트남 전체 TV 방영 드라마 가운데 한국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80% 정도였고 K-POP은 60만 명의 팬클럽을 가질 만큼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최근 들어 중국이나 일본의 드라마와 음악이 늘고 있다고 현지 동포들은 전한다. 호찌민한인회 김규 회장은 “한국 정부에서 한류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기초작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보급이나 한국 문화, 한식 보급을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현지인들에게 체험할 기회도 만들어줘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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