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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호사의 독일 파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독일 현지에서 열렸다. 재독한인간호사협회(회장 윤행자)는 급여 대부분을 고국으로 송금하면서 한국 경제개발에 이바지하고 재독 한인사회 발전에 앞장서온 파독 간호사의 업적을 기리려고 5월 20∼21일 독일 에센의 파독광부문화회관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었다.


양국 가교·경제 발전 기여

20일 파독광부문화회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파독 간호사 50년의 역사’, ‘21세기의 글로벌 간호’를 주제로 기조강연, 주제 발표, 토론 등이 이어졌다. 다음날 독일 광산회관인 촐페어라인에서 열린 ‘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식’에는 1천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독일 전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모인 이들 간호사에, 미주와 호주에서 한인 간호사 97명이 가세하고 한국에서도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함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하 영상을 통해 “여러분이 흘렸던 땀과 눈물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고, 독일 국민에게 큰 감동과 신뢰를 주면서 양국관계 발전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고 치하했다. 정진엽 장관은 “50년 역사의 장(場)”이라고 기념식의 의미를 부여하고 “후손들에게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는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경수 주독 대사는 지난 50년 한독 양국은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을 이루는 같은 과정에 있었다며 “이제 한독은 서로 가장 필요한 동반자 관계가 됐고 그 근저엔 여러분의 노고가 있다”고 보탰다.


파독 간호사로서 기념식을 이끈 윤행자 재독한인간호협회 회장은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일해 모두 백의의 천사가 됐다.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다”라며 울먹였다.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여러분은 선각자이자 애국자로서 자랑스럽고 존경한다”라고, 유제헌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은 “파독 간호사 누나, 대한민국의 영원한 누나로 부르겠다”라고 각각 말해 큰 박수와 웃음을 끌어냈다.


파독 광부 모임인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최광섭 회장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형제자매처럼 지냈다. 앞으로도 아름답게 살아가자”고 깊은 유대감을 표했다. 집권 다수 기독민주당 소속의 토마스 쿠펜 에센 시장은 “여러분은 정말 독일사회의 모범이었다”며 “지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함께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날 상당수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한 간호사들은 즉석에서 생일을 맞은 동료, 선후배에게 축가를 불러주고 지역 한인으로 구성된 한두레 마당 전통예술단, 전독일 파독 간호사 합창단, 아리랑 무용단이 잇따라 흥겨운 공연을 펼쳐 분위기를 달궜다. 정진엽 장관은 간호사 20명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기념촬영도 했다.


‘불루 엔젤’로 불린 파독 산업전사

한국해외개발공사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독일로 파견한 간호사는 모두 1만 226명이다. 이들은 언어, 음식, 문화적 충격을 견디며 독일 각지 병원에서 친절과 성실로 환자를 대한 끝에 ‘블루 엔젤’, ‘주사 잘 놓는 간호사’란 찬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초기에는 차별과 무시를 견디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다. 윤 회장은 “이미 한국에서 간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음에도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병원이 허드렛일을 많이 시켰다”며 “한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까 봐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쉬는 틈틈이 부지런히 독일어를 익혔더니 점차 인정을 받게 됐다”고 회고했다. 더 나은 세상에서 경험을 쌓고 가족 부양에 힘을 보태려고 독일행을 택한 간호사들은 월급의 대부분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송금했다.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진화위)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7년까지 파독 광부·간호사의 송금액은 1억 7천만 달러다. 고창원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 회장은 “1963년 당시 한국의 수출액은 1억 달러, 파독 근로자의 외화 송금액은 연간 평균 1천만 달러였지만 100% 외화 가득률(稼得率)을 고려하면 수출액에 맞먹는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당시 파독간호사의 계약 기간은 3년이었지만 대부분 연장 근무를 신청했다. 재독한인간호사협회 관계자는 “연장 근무를 하며 독일에 남은 간호사들은 평균 25∼40년 정도 근무하면서 모국으로 송금을 지속해왔기에 실제로 외화 송금액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독일 이민통합의 롤모델’로 자리매김

독일 정부는 간호사들이 기초를 다진 현지 한인사회를 ‘이민통합의 롤모델’이라 부른다. 한인 간호사들은 결혼 적령기가 되자 대부분 독일 남성과 결혼했고 일부는 파독광부와 가정을 꾸렸다. 여느 한국 부모처럼 자식 교육에 열정을 다한 덕분에 2세들은 의사, 법조인, 교수, 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주류사회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인재로 키워낸 것이다. 노미자 ‘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은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 한인 사회를 처음으로 구성했고 열심히 터전을 닦은 덕분에 나중에 이주한 이들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며 “차세대에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려고 한글학교를 세웠고 국악 등 전통문화를 알리려고 풍물패, 무용단 활동을 지금까지 하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했다.


1970년대 후반 독일에서 근무한 권영민 전 독일대사는 “파독 간호사들은 자녀 교육에 무척 엄격했다”며 “덕분에 주류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차세대 인재가 늘어났고, 앞으로 이들이 독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간호사들의 노고에 힘입어 한국인은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다문화 이주민으로 꼽힌다. 재독한인간호사협회는 독일 정부의 요청으로 최근 독일로 건너온 난민을 돕는 조기 정착 지원 프로그램에 파독간호사를 강사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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