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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창

지난 4월 1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우크라이나하우스에서는 공연 피날레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나는 벅찬 감동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뒤로 하고 500여 관객을 대상으로 지휘했고 한인과 고려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음악 대화’란 주제로 마련한 공연으로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 각국 외교관, 한인, 고려인 등을 초청한 행사였다. 유럽과 한국 무대를 오가며 지휘와 작곡 활동을 벌여온 나는 무대에서 한국 클래식의 우수성을 알린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된 건 1년 전 SNS를 통해 받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 덕분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의 단장인 헬레나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개최되는 현대음악제에 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나는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된 세계 4대 현대 음악제인 슈타이리셔 헤릅스트( Steirischer Herbst)에서 ‘독백(Monolog)’을 출품해 아시아 최고작곡가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 적이 있다. 그는 이 곡의 연주 음반을 들어보고 감동했다며 공연 요청을 해온 것이다. 이 곡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었던 이육사의 시 ‘독백’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세계 공통어인 음악을 통해 세계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겠다고 만들었다. 세계 현대음악제에서 최고작품으로 선정될 때 유럽의 음악평론가는 “한 편의 드라마를 귀로 듣는 듯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와 나는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장을 열어보자며 내가 작곡한 다른 작품을 함께 연주하고 피날레로 ‘아리랑’을 넣기로 합의했다. 양국 문화 교류를 위해 마련된 무대라서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곡들로 준비했다. 4월 7일 현지에 도착해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시작했다. 유럽에서 18년간 활동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낯설지가 않았다. 키예프가 구소련 시절부터 발레와 오페라 등 클래식으로 이름난 도시여서인지 내 집처럼 편안했다. 신임 이양구 대사를 비롯해 모든 대사관 직원이 너무도 따뜻이 맞이해 준 덕분에 긴장감을 풀고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어도 국적도 달랐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과는 음악을 통해 서로 교감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았던 우크라이나라여서인지 단원들은 금방 ‘독백’이란 곡에 빠져들었고 연주에 몰입했다. 이번 공연에서 나는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를 소재로 한 곡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연습 도중에 일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국영방송 인터뷰가 잡혀서 방송에 출연해 공연을 소개했다. 현지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당일 행사 전에 열린 기자회견에는 국영방송을 비롯해 20여 개 언론사가 취재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1부에서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작품 4곡이 연주됐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나는 ‘독백’을 시작으로 여러 곡을 지휘했다. 한 작품 한 작품 연주되며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마지막 곡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편곡한 ‘아리랑’이 연주됐다.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구성된 합창단을 통해 ‘아리랑’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나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고 급기야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를 했다.





당시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객석에 앉아 있던 많은 한국 청중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모두가 하나 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연주가 끝나자 수많은 관객이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왔고 앙코르로 헨델의 ‘메시아’ 가운데 ‘할렐루야’를 연주했다. 내 작품으로 해외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데다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몰아일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의 감동은 음악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이 아닐까 싶다. 그 순간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오직 한 길로만 걸어온 삶이 보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유럽의 많은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나로서는 최근 들어 클래식에서도 한류의 바람이 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른바 ‘K-클래식’이 인기인 이유는 음악가의 역량이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그만큼 높아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경제 발전에만 몰두해왔지만 이제는 문화 교류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한국 곡이 연주된 것은 이제 작지만 아주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여겨진다. 더 많은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가 나와서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K-클래식’이 물결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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