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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문학


오랜만에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는 아침이다. 쌀이 떨어져 일주일째 밀가루 빵으로 연명하던 참이라 더없이 반가운 냄새다. 아이 넷 키우느라 경황이 없는 아내를 대신해서 쌀 쇼핑은 주로 내가 담당하는데 요사이 야근이 많아 쌀 살 틈이 없었다.


설마 밥도 없이 된장찌개만 먹지는 않을 테고 참다못한 아내가 결국 쌀을 사온 모양이다.


한국 음식에 굶주린 위장이 한바탕 용트림을 친다. 가스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 뚝배기를 보니 더는 참기 어렵다. 빈 공기와 주걱을 들고 덜컹 밥통을 열어젖혔다. 어린 시절 한국 고향집에서처럼 뜨거운 밥에다 된장국물 붓고 김치 한 쪽 올리고 비벼 먹을 작정이다.


뽀얀 김 사이로 주걱을 밀어 넣고 막 밥을 푸는데 쌀 모양이 좀 이상하다. 동글동글 윤기가 흐르는 익숙한 자태가 아니다. 타이나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늘고 길쭉한 재스민 쌀이 아닌가.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다. 고향의 맛에 불순물이라도 끼어든 듯 불쾌감이 밀려온다.


“이게 뭐야!” 잔뜩 기대했는데 얄미운 외모에다 푸석푸석한 촉감의 재스민 쌀이 영 마뜩지 않다. ‘문경쌀, 뜸부기쌀, 황금빛 노을쌀, 서래야,…’처럼 이름만 들어도 군침 흐르는 토종미가 즐비한데 하필이면 외국 쌀로 밥을 짓다니…. 볶음밥이면 몰라도 된장찌개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쌀이다.


왜 하필이면 재스민 쌀을 샀지?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다시 짜증으로 변했다. 기분 상할까 조심하는 이른 아침이지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한국 식품점에서 산 쌀이 아니라 인도인 옆집에서 꾼 쌀이라고 했다. 된장찌개에 밥 한번 먹어보겠다고 이웃에게서 임시변통한 셈이다. 아내가 붙임성 좋은 줄은 알았지만 참 대단한 위인이다.


연초에 이사 온 옆집에는 우리 딸과 같은 학교 동갑내기가 있다. 둘은 만나자마자 금방 친해져 학교도 같이 다니고 공부도 함께 한다. 서로 ‘베프(Best Friend)’로 부르며 틈만 나면 친자매처럼 어울리는 사이다.


한데 어른들은 데면데면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종교도 달라 불편한 마음이 들어 멀찍이서 조심하는 편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려다 뭐라도 삐끗하면 괜히 거북해지기 십상이다. 무리 않고 가만히 있으면 본전은 하지 않을까?


한번은 딸을 데리러 옆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맞은편 벽면에 이름 모를 신상(神像)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신교를 섬기는 힌두교 가정다웠다. 현관뿐 아니라 집안 곳곳에 크고 작은 신상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색하고 불안한 마음에 딸이 나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그 뒤로 지척이 천리라고 이웃이 마치 다른 문명권 세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가끔 옆집 남자와 마주칠 때면 건성으로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었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공통 화제도 찾기 어렵다. 그저 아이들끼리 친하기에 모른 척할 수 없을 뿐이다. 말만 이웃이지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다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바비큐 파티라도 할라치면 옆집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한국인에게 소갈비는 언제나 풍요의 상징이다. 그런데 옆집 사람들은 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는 힌두교도가 아닌가? 갈비 굽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를 야만인이라고 욕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아닌 게 아니라 바비큐 파티 다음 날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거무칙칙한 옆집 남자의 얼굴이 더욱 굳어 보인다. 한동안 이웃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런 형편에 아내가 그것도 이른 아침에 쌀을 꾸어 오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정말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부탁이다. 더구나 쌀은 주식이라 국제적으로 궁색한 티를 광고한 셈이 아닌가? 그렇지만 고만고만한 아이 넷에 둘러싸여 팍팍한 인생을 사는 아내를 나무라기도 뭣하다. 진작 쌀을 사놓지 않은 내 탓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 계속 따지고 말고 할 여력이 없다. 재스민 밥이든 뭐든 빨리 먹어 허전한 속을 달래야 할 때다.


하릴없이 까칠까칠한 밥을 푸기 시작했다. 팍팍한 질감의 밥에다 진한 된장국물 붓고 배추김치도 얹었다. 물기나 찰기가 부족해서 버석버석하기 이를 데 없다. 된장은 된장대로, 밥은 밥대로 하나로 섞이지 못하고 따로 따로 놀고 있었다. 입맛이 동하진 않지만 시장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대충 된장국물에다 밥을 말다시피 하고 한술 떠먹었다.


당연히 기대했던 맛이 아니다. 된장국물은 제대로 우러났는데 역시 밥맛이 얍삽하다. 한데 계속 씹다 보니 어색하지만 평소에 접하지 못한 독특한 맛이 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가장 토속적인 음식이 느닷없이 퓨전 메뉴로 변했나? 아니면 시장기에 휘둘린 탓에 미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가? 화학적으로 섞이지 않는 된장과 밥알이 연달아 교차하며 묘한 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나니 재스민 쌀과 된장도 그리 나쁘지 않는 궁합이다 싶다. 흔쾌히 한국인 이웃집에 쌀을 꿔준 인도 아낙의 후덕한 씀씀이도 마음에 든다. 알고 보니 아내는 쌀뿐 아니라 그동안 자질구레한 품목들 때문에 자주 옆집 신세를 졌다고 한다. 가위, 빵, 케첩, 카레가루 등이 오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몇 번 카레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그야말로 인도인들이 먹는 카레였으니 원조에 가까운 맛이 아니었을까?


아내는 신세만 지고 잠자코 있을 성격이 아니다. 손이 커서 음식을 만들면 양을 많이 해서 여기저기 나눠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벌써 빈대떡이나 파전 같은 한국 음식도 무시로 옆집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심지어 매운 떡볶이까지 전파한 지 오래라고 한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필요가 피부색, 종교, 문화의 벽을 넘어 양국의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카레나 떡볶이 같은 음식 문화의 고갱이들이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인종, 이념, 종교, 철학 등이 편 가름의 수단으로 오용될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현실 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이편저편 나누어 소모적인 갈등과 분쟁을 벌이곤 한다. 나도 슬쩍 스쳐 지나간 다신교 문화가 불러일으킨 이질감 때문에 이웃사촌을 바다 건너 외국인처럼 먼 존재로만 여기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상대를 이상한 존재로만 치부한 ‘된장찌개’와 ‘재스민 쌀’처럼 말이다.


인도와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멀리 시드니까지 와서 이웃으로 만났다면 실로 경이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경이 속에서 오늘 아침 재스민 쌀은 된장찌개와 한 그릇에 비벼져 어느 중년 한국인 아저씨의 시장기를 달랬다. 된장국물에 젖은 재스민 쌀밥 몇 알을 보며 소중한 인연을 ‘소 닭 보듯’ 소홀히 대했음을 반성했다. 인종과 종교, 문화의 벽을 넘어 쌀을 얻으러 이웃집 문을 두드린 아내의 용기가 부러웠다. 앞으로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를 만나면 재스민 쌀밥 맛있게 먹었다고 상냥하게 인사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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