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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통신원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한·중 수교와 도시화·세계화로 중국 조선족 사회는 격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전통적 거주지에서 절반 이상의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지역 공동체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소수민족보다 발 빠르게 경제적 부를 축적해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는 상반된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내륙 도시와 한국 등으로 진출한 1세대는 초창기 단순 노무직 등에 종사하며 실력을 키웠다. 이에 비해 2세대라 할 수 있는 20∼30대의 청년들은 고학력·현지화·직업의 다양성 등의 면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조선족 청년은 창업과 취업에 적극적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옌지(延吉)시에서 연변한식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김순옥(54·여) 연변조선족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은 “요리사가 되거나 한식당을 차리겠다는 포부를 안고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가 최근 부쩍 늘었다”며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요리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아 꺼리던 직업이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매달 20∼3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이곳 졸업생으로 옌지시에서 ‘사계절 돌솥밥’ 식당을 운영하는 박찬결(28·남) 씨는 “한식의 인기 덕분에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족(漢族)”이라며 “기회가 되면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중국 전역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업 CE0를 비롯해 언론·법률·예술·스포츠 분야 청년 인재들로 구성된 연변조선족청년경영자연의회(이하 청경연·회장 김일)가 조선족 차세대를 이끌어갈 단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단체는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의 후원으로 지난해 11월 결성됐다. 나이는 25세 이상 40대 이하이며 회원 수는 100여 명을 헤아린다.


김일(42) 회장은 “회원 가운데 해외에서 거주하거나 유학한 경험자가 많아 감각이 국제적”이라며 “서로 협력해 동반 성장하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나눔’을 활동의 중심에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 전역과 한국으로 명태를 수출해 5천만 위안(약 91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 한국인 디자이너를 채용해 동북 3성에서 양복과 근로자 단체복 시장을 석권한 기업 등도 회원사”라며 “청년 기업이지만 규모는 이미 업계를 주름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일(32) 씨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해양대를 졸업한 뒤 한국 선박회사인 STX를 거쳐 물류회사인 한진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청경연 설립 소식을 듣자 곧바로 사표를 내고 옌볜으로 돌아왔다. 진작부터 고향에서 사업을 펼쳐보고 싶었던 그는 다양한 분야의 청년과 교류하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산업용 발전기 회사인 BIDA인터내셔널의 지린성 총대리점 사장인 그는 “중국 정부가 창춘(長春)-지린-투먼(圖們) 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의 나선항까지 도로가 완공되면 옌볜은 동북아 물류 중심 지역이 돼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며 “덩달아 선박·해운 분야 사업도 커질 것에 대비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조선족 기업인 단체들 “글로벌 경제 공동체 건설에 앞장”



과거 조선족 사회는 농촌 등 마을에 기반을 둔 ‘밀집형 지역공동체’였으나 최근에는 탈농촌과 도시화, 내륙 도시 및 해외 진출 등의 추세에 따라 ‘네트워크 공동체’로 바뀌고 있다. 지린성의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여전히 조선족 공동체를 대표하고 있음에도 거주지의 글로벌화로 유기적인 네트워킹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조선족 사회를 하나로 뭉치고 한민족 간의 교류에도 앞장서도록 기업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새롭게 등장해 부를 축적했다. 기업인 단체를 이끌면서 차세대 육성과 조선족의 정체성 유지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어 ‘조선족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족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간다는 표성룡(61) 조선족기업가연합회 회장은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선양(瀋陽) 등 중국 주요 도시에 27개 지회를 두고 4천 개 회원사에 1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조선족 최대 단체의 수장이다.


랴오닝성 선양의 조선족 밀집 지역인 시타(西塔)에 연합회 사무실을 두고 있는 표 회장은 “조만간 4∼5곳에 새로 지회가 설립될 예정”이라며 “앞으로 해외 지회도 결성해 명실상부한 조선족 글로벌 경제 공동체로 뿌리내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허덕환(56)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은 “창업 1세대가 60∼70대로 접어들어 후계자를 올바로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창의적인 차세대의 패기와 생존력이 강한 창업 세대의 경험을 잘 살리면 더 큰 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7년에 설립된 협회는 가장 오래된 조선족 기업인 단체다. 100여 개의 회원사는 대부분 각 분야에서 선두 주자여서 지역사회의 신망도 두텁다.


30∼40대인 2세들에게 경험도 전수하고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협회는 지난해 ‘연변조선족청년경영자연의회’를 만들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있다. 옌지 시내에 2개의 백화점과 서점 등을 운영하는 허 회장은 “경제인 단체지만 동포 사회의 각종 행사를 후원하고 장학 사업과 차세대 육성에 앞장서다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협회가 동포사회의 구심점이 됐다”면서 “소수민족이라 정치적 성장에 한계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세계한인무역협회(이하 월드옥타) 연길지회를 이끄는 허재룡(55) 회장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과 포부를 갖고 자신감 있게 살도록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면서 “창업 사관학교인 월드옥타 차세대 무역스쿨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드옥타 연길지회에는 165개사에 600여 명의 회원이 소속돼 있다. 무역스쿨이 배출한 차세대도 7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소수민족의 미래는 경제적 자립도와 연관이 깊다”며 “다양한 방면에서 기업인이 많이 나올수록 사회적 영향력도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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