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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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7월 20일 양국 수도 워싱턴DC와 아바나에 대사관을 재개설했다. 이로써 1961년 단절된 양국의 국교가 54년 만에 완전히 정상화됐다. 양국은 이날 상대국 수도에 있는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공식 승격하고 업무를 재개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국교를 단절한 양국은 1977년 이익대표부를 설치해 영사 업무를 담당해 왔다.


덩달아 한국과 쿠바의 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미수교 상태이지만 양국 국민이 느끼는 유·무형의 거리는 이미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쿠바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가 하면, 쿠바에서 한류 드라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12년 전 한 해 100명도 채 안 됐던 한국인 관광객은 작년 한 해에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양국 간 ‘마음의 거리’를 더욱 좁혀놓고 있는 것은 한류 드라마다. 국영TV 방송국인 ‘카날 아바나’의 리우바르 로사다 에르난데스 총국장은 2012년 ‘내조의 여왕’이 방영될 때 시청률이 무려 8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그는 “한류 드라마가 우리 쿠바인들을 한국 문화에 푹 빠뜨려놓았다”면서 “‘아가씨를 부탁해’, ‘대장금’ 등의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보이면서 한국 드라마가 쿠바 안방을 장악해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드라마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지역의 한인 최초 이주는 1905년 5월 15일,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Merida) 주에 도착한 1천31명의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4년 10월 15일부터 조선 각지에는 4개월 동안 멕시코의 계약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붙었다. 1905년 2월 집결지인 제물포항에는 1천여 명의 계약노동 희망자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약 2개월간의 항해를 끝내고 멕시코에 도착했다.


1921년 3월 초 멕시코 한인 이주 노동자 가운데 300여 명은 쿠바로 대대적인 이주를 했다. 멕시코에서 이들은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생활이 더 낫다고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프로그레소 항을 떠난 이주자들은 쿠바 이민국의 수속을 거친 후 3월 25일 쿠바의 마나티 항에 도착했다.


쿠바 이민 1세대들, 고된 삶 속에서 독립운동 자금 마련


쿠바 동부 마나티 항구 마을에서 사탕수수 수확 일을 하던 이들은 그해 5월에 다시 인근의 마탄사스 시로 옮겨 농장 일을 했다. 이후 마탄사스 농장 지역은 쿠바 한인의 주된 근거지로 자리 잡게 된다. 이들 한인은 1937∼1944년 독립운동 자금 1천499달러를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이는 초대 쿠바 한인협의회 회장인 고 임천택(에르네스토 임·1903∼1985) 선생이 주도했다.


쿠바에서 독립운동과 한인 교육 활동에 나선 임천택 선생은 1925년 한인촌에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해 교사로 활동하는가 하면 1930년대에는 청년학원과 대한여자애국단 쿠바지부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두 살 때인 1903년 어머니와 함께 유카탄으로 건너와 16년간 한인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친 것이 전부였으나 쿠바에서의 한인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임 선생은 마탄사스, 카르데나스 등지에 흩어진 한인 지방회를 규합해 ‘재쿠바 한족단’을 결성한 뒤 1934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광복운동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에는 고국과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쿠바에서도 광복을 위한 후원을 보냈다고 서술돼 있다.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하루 임금 7∼8원을 받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인 지방회 회원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악착같이 정성을 모았다.


쿠바 한인 후손들은 8월 16일 한·쿠바 문화클럽에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미·카리브 지역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안토니오 김 함 한인후손협의회 회장, 에라스모 데 헤수스 라스카노 로페스 쿠바 호세마르티 문화원 수석부원장, 한인 후손, 현지인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한·쿠바 문화클럽은 민주평통 중미·카리브 지역협의회 소속 13개국 자문위원들이 주도해 쿠바 호세마르티 문화원의 협조 하에 작년 8월 건립됐다. 1921년 한인 1세대가 멕시코에서 재이주해 정착한 지 93년 만에 처음 세워진 이 문화클럽은 한국 문화 소개와 한글학교 운영의 요람이자 후손들과 현지인들의 교류와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인 후손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쿠바인들과 잘 융화해 살아왔다. 110년이 지난 지금 후손은 1천1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순수 혈통은 8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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