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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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일본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882년에 4명, 1909년에는 790명의 조선인이 일본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유학생이고 소수가 외교관, 정치적 망명자이다.


재일한인의 본격적인 이주와 정착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라는 역사적 조건하에서 진행되었다. 한일 강제병합 후 일제는 강압적인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많은 토지를 ‘국유’로 편입한 후 일본인 지주 및 토지회사에 불하했다.


이로 인해 많은 농민이 지금껏 경작하던 토지를 잃고 도시빈민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파급 효과로 활황을 맞은 일본 기업은 국내의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저임금의 조선인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그들은 모집 브로커를 조선 지역에 파견해 노동자 모집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재일조선인의 수는 1915년의 3천917명에서 1920년에는 3만189명으로 5년 만에 8배가량 증가했다.


일본은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개시하면서 전선 확대에 따른 병력과 일본 본토의 전시산업을 지탱할 노동력 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38년 4월에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1939년 7월에 노동력 동원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1939년 9월에 ‘조선인 노동자 모집 및 도항 취급 요강’을 발표해 강제연행이 시작되었다. 탄광, 광산으로의 조선노동자 강제연행이 시작되었고, 후에 철강, 토목산업 등 그 외의 모집 분야에도 확대되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연행된 인원은 72만4천787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군인, 군속 36만5천263명과 8만여 명에 이르는 일본군 위안부를 합하면 조선인 강제연행자 수는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귀국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의 규모는 광복 당시 230만 명에 달했으나 1947년 12월 말 재외국민 등록자 중 재일동포는 59만8천507명이었다.


1949년 5월 말 정부가 발표한 귀국자의 수만도 140여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귀환은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했다.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잔류한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귀국 희망자 등록을 실시하고, 조선인 귀환자가 고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금액을 1천 엔 이내로 제한했다.


가난한 조선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고국에서 생활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보장도 없는 터에 어렵게 모은 재산을 포기하고 일본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재일동포의 마음은 늘 조국을 향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을 구하겠다며 모두 642명의 재일동포 학도의용군이 목숨을 걸고 참전했다.


3년에 걸친 6·25 전쟁 기간에 52명은 전사했고 83명은 전투 도중 행방불명됐다.


재일동포의 6·25 참전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재외국민 참전이다.


순국선열이 잠들어 있는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 제16묘역에 가면 재일학도의용군의 위령비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단장 오공태)은 최근 재일동포가 모국에 기여한 애국애족(愛國愛族) 사례를 모은 책자 ‘민단은 대한민국과 하나이다’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는 1997년 IMF 위기 때 조국을 위해 15억 달러를 송금하고 300억 엔 규모의 국채를 사들이는 등 조국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늘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힘을 보태온 재일동포의 모습이 담겼다.


이제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는 제2세대를 넘어서 3세, 4세로 이어지고 있다. 재일한인을 구분해 보면 농민층 몰락에 따라 도항한 제1기(1910∼1938), 강제연행에 의해 도항한 제2기(1939~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후 일본에 남게 된 제3기로 나눈다.





종전 이전에 도일한 한인을 구세대(old timer)라고 한다면 1989년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도일한 한인은 ‘뉴커머’(new comer)라고 불리는데 이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를 재일한인 형성사의 제4기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일본의 경제호황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10여만 명의 ‘뉴커머’는 재일한인사회에 새로운 집단을 형성했다.


‘뉴커머’의 주요 구성원인 기업 및 기관 파견 주재원과 그 가족의 체류기간은 대개 3∼5년 정도다.


‘뉴커머’는 구세대에 비해 과거사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행동 양태도 당당해 재일동포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교부가 발간한 ‘2013년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으로 재외동포 인구는 701만2천492명이며, 재일동포는 89만 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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