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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통신원

꿈을 향해 뛰는 뉴욕의 한인 차세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많이 겪게 된다. 왜 한국말을 꼭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기억, 니은, 가, 나, 다, 라는 어렵고 낯선 외국어일 뿐이다.


미국 현지에서 나고 자라가는 한국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한국어와 영어의 중간언어인, 그야말로 ‘콩글리시’를 듣다보면 재미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콩글리시가 넘쳐나는 대화


5년 전에 다른 주로 이사를 갔던 가족이 있다. 일이 잘 풀려 다시 한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몇 주 전 주일, 교회에서 낯이 익는다 싶은 남자아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워낙에 조기유학으로 인기 좋은 동네인지라 ‘또 하나 보냈군’ 하는 생각만 한번 하고 지나쳤다.


새로 온 녀석이 어찌나 말이 많고 시끄럽던지, 다시 한 번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4살이 지난 아이가 지껄이는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이 녀석은 내게, “얘 말이 왜 이래요?” 고 물어왔다.


나는 속으로 ‘'왜 이렇긴 이놈아. 아직 아기니까 그렇지. 별걸 다 궁금해 하네’라며 아이를 유심히 처다보며 물어 보았더니 5년 전에 떠났던 가족의 아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몸이 두 배가 된 것만 빼고는….


한국에서 이민 온지 얼마 안 되는 ‘신선한 한국 아이들’은 참 말도 잘 한다. 빠르고 눈치 있고 똑소리 나게 보여야 인정받는 한국문화 탓인지, 같은 나이또래라 하여도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국 아이들과는 많이 다름을 느낀다.


뭐랄까….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두 살 위로 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조숙하다’ 는 말을 종종 듣고 자랐던 나 역시, 이곳에서 자라가는 한국 아이들보다는 갓 한국에서 들어온 아이들이 더 친숙한 느낌이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단어며 사자성어까지 들먹거리며 이야기해도 너무 잘 통하고, 유머감각도 비슷한 듯하고, 무엇보다 반응이 빨라 속이 시원하다.


그에 반해 일곱 살 난 나의 아들의 말에서는 무슨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뭘 했다는 건지, 할 거라는 건지, 제가 했다는 건지, 저를 그렇게 했다는 건지, 아들의 말에는 모든 조사가 ‘가’로 통한다.


“아빠가, 엄마가, 돈가, 브랜드가….”
영어와 한국말 나오는 대로 뒤죽박죽이다.
“아빠, 캔 유(Can you) 업어줘 미(me)?"
“싸커(soccer) 놀아도 돼?”
“라면 이즈 투 매워(Ramen is too hot)”


어느때인가는 한국 역사 드라마를 빌려다 TV로 보는데 어느 장수가 부하들에게 ‘진군하라, 진군하라’를 외치자 보고 있던 아들이 어마를 보며 묻는다 “친구하라, 친구하라?”


‘여름성경학교’는 ‘아름다운 학교’가 되어버렸고, ‘거실’인지 ‘교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고, 영어말, 한글말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생성된다. 양말은 입고(wear socks), 머리는 빨고(wash hair) 식으로….


아들은 종종 아빠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 옆집 아저씨 보듯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조기 모국어 교육이 중요


이중 언어를 감당해 내야만 하는 이곳 아이들의 고충 또한 이해해줘야 하건만, 모국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 제대로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이 옆에 앉혀놓고 한국어 가르치다 ‘미움의 강으로 흘러가곤 했다’던 이웃집 선배 아줌마의 명언이 나의 현실이 되어 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한국말을 하지 않으려 든다는데, 이렇게 미루기만 하다 영영 한국말을 가르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해진다.(아니, 매우 불안하다….)


그렇다고 계속 방치해 두면 아이들에게 있어 모국어는 점점 먼나라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아직은 어려서 영어와 한국어를 적당히 섞어서 쓰기도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영어만을 쓰게 될 것이다. 많은 한인 가정의 자녀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집에서조차 가족들과 영어로만 대화를 하려고 든다.


미국에 살고 있으니 영어를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은 우리 아이들이 평생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것. 나이를 먹어 이도 저도 아니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면 어릴 적에 우리말 교육에 부모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데….엄마의 이런 속은 알지도 못한 채, 아들 녀석은 오늘도 딱 제 수준의 농담을 하며 낄낄거린다.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말하면 아이 스크림 같아~~”
(icecream → I Scream, 아이스크림 → 나는 비명 지른다)
그래 이놈아,
너 때문에 내가 스크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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