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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이민사

‘주류 시민’으로 성장한 호주 한인사회

지난 8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열도속의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이 열렸다. 두 달 동안 15만 명이 사진전을 관람하는 등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생소한 재일동포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전시회에서는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비롯하여, 열악한 환경과 차별 속에서도 역경을 극복하고 일본사회에서 당당한 한민족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즉,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재일동포의 역사는 일본의 식민 통치와 함께 시작되었다. 1910~20년대에 이루어진 조선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1920년대 후반 이후 매년 8~15만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 이후 부족해진 일본 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탄광과 광산, 토목공사 현장에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에서 잔류한 재일동포가 약 70만 명. 이렇게 시작된 재일동포는 지난 100여 년간 일본의 혹독한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재일동포는 90만 명에 달한다. 동포 1, 2세가 대부분인 다른 나라와 달리, 5세대까지 존재하는 재일동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들이다. 비록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내외적으로 많은 설움과 멸시를 받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몸소 그 사랑을 실천한 동포 역시 재일동포다.

 재일동포의 모국 사람은 6.25 전쟁 시 재일학도의용군의 참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88 서 올림픽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 성금인 541억 원을 모아 고국에 기부했다. IMF 구제금융 시절에는 다시 15억 달러를 송금하기도 했다.

재일동포는 자신들의 출생지인 고국의 ‘고향’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제주도의 ‘감귤 묘목’ 도입, 대한민국 최초 경찰 사이드카 부대 창설 지원, 재일동포 투자로 만들어진 ‘구로공단’ 등 그 사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재일동포 사회는 이제 백진훈 참의원을 비롯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 등 정·재계에 굵직한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다. 문화와 스포츠계에서도 재일동포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일본 야구의 명인 장훈, 세계적인 바이올린 장인 진창현 등 오로지 실력만으로 차별 속에서 우뚝 선 인물들이다.


재일동포사회는 최근 일본 사회에서의 ‘정주와 공생’을 목표로 지역 사회 봉사를 비롯해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재일한인역사관의 강덕상 관장은 “갖은 차별 속에서도 국적을 유지하고 살아온 재일동포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한 축”이라며 “사진전이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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