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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우호 선린의 다리역할 ‘조선족’

한국과 중국이 8월 24일 국교 정상화 20주년을 맞았다. 9월 3일에는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설립 60주년 기념 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중국동포) 사회는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고 모국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늘어났다. 중국의 조선족 밀집지역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50만명에 달하는 국내 거주 조선족은 단순 노무직에 그치지 않고 각 분야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어서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한·중 수교 이후 급성장한 ‘조선족’


1992년 8월 역사적인 한·중 국교 정상화는 동북 3성의 조선족 동포들에게 ‘반세기 가뭄’의 끝을 알리는 ‘단비’였다.

오랜 역사적 유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1949.10)에 이어 6·25 전쟁까지 치르면서 양국 간 적대관계가 지속되자 한국과 조선족 사회의 거리는 서방의 어떤 나라보다도 멀어졌다.


그러나 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는 모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급진전되면서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같은 언어를 쓰고 한민족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조선족은 모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왕래 등에 힘입어 중국 내 50여개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이뤘다.


한국도 재중동포들과의 지속적인 협력에 힘입어 투자·교역 및 정치관계 등에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등 호혜적인 결실을 봤다.


수교 후 한국 기업들의 ‘차이나 러시’ 가속화는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한국과 연고가 있는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포 집단거주 지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동포들이 한국계 기업에 노무직뿐 아니라 통역 등으로 일했고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식당과 유흥업소도 번성했다.


7월 14일자 흑룡강신문에 따르면 올해로 설립 60주년(9.3)을 맞는 옌볜자치주의 지난해 지역내총생산(GRDP)이 652억위안, 1인당 생산총액은 2만9천782위안으로 1952년에 비해 각각 61배, 21.5배 늘었다.


수출입통계 작성을 시작한 1954년 38만 달러이던 무역 규모도 2007년 10억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8억5천만달러로 늘어나 무려 5천배 증가했다.


옌볜주의 대학생 수는 2만2천명으로 1952년의 19.6배에 달했다. 공공도서관과 박물관은 각각 9개, 10개로 느는 등 교육과 문화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좇아 본격적으로 한국을 찾게 된 것도 수교가 가져온 현상이다.


동포들은 국내 3D 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1993년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2001년부터 ‘1년 연수, 2년 취업’)와 방문 취업제(2007년) 등에 힘입어 단순 노무직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찾아 대거 한국행 비자를 신청했다. 수교 이후 한국을 다녀간 조선족은 복수 방문자를 합쳐 20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이들 상당수가 연변 출신이다


이들은 힘들게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해 중국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조선족인터넷매체인 ‘조글로미디어’에 따르면 최근 해외 노무자들이 옌볜조선족자치주로 보내는 돈은 10억 달러로 자치주 재정 총수입의 2.5배에 달한다.


그러나 조선족이 줄지어 한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입국자가 브로커 등에 속아 귀국을 포기,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다. 수교 후 주로 청년층이 구직이나 결혼을 목적으로 서울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로 떠나면서 조선족 사회는 가족해체, 농촌 공동화 현상, 조선족 학교 급감, 청소년층의 정체성 상실 등을 겪어야 했다.


한국내 조선족 위상 ‘3세대’ 등장으로 높아져


9월 1일 중국 옌지에서 열린 한·중경제포럼에서 가사이 노부유키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지금의 경제 발전을 이뤄낸 데는 조선족을 비롯한 재외 한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한국 경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며 수교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조선족이 산업인력으로 또는 사업 파트너로 기업의 성장을 도왔다고 밝혔다.


국내로 들어온 조선족들은 부모 세대들의 노력으로 좋은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학했거나 중국의 명문대를 나온 ‘3세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평판도 서서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실제 2008년부터 조선족에 대해서도 허용된 재외동포(F-4) 비자 가운데 우수한 인재(F-4-2)로 분류돼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이 지난해 말 현재 2만9천617명에 달한다.


이들은 국내 대학과 대학원에 유학해 석·박사가 된 다음 취업을 하거나 중국 또는 다른 나라에서 전문가로 특별 채용돼 자리를 잡고 있다.


30~40대의 3세대들은 주로 대학교수를 비롯해 증권사 애널리스트, 정책연구원·기업의 연구원,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부모세대처럼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명함에 한글 이름과 중국 이름을 병기한다.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해 노력한 부모와는 달리 국적에 집착하지 않는 특징도 있다.


하나대투증권에서 중국 증시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이기용(32) 씨는 “주위의 전문직 친구들은 회사에서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경쟁력을 갖춘다면 조선족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조선족들이 스스로 발전을 위해 좀더 노력한다면 장기적으로 조선족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봉섭 재외동포재단 조사연구팀장은 조선족 사회의 최대 당면 과제인 인구 감소와 청소년들의 정체성 상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조선족들이 생활 터전에서도 돈벌이할 수 있도록 산업 인프라를 확충할 것을 제안했다.


김 팀장은 특히 청소년들을 위해 언어 교육과 학교 교육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외 체류 중인 조선족들이 화교사회에 편입되지 않고 한인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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