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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학

 

동포문학

중간선

“또르륵”
나의 원주형 고무지우개가 팔꿈치에 밀리여 중간선을 넘어 갔다.

“오늘부터 무엇이든 중간선을 넘어 오면 가지기다.”
영호는 부리나케 고무지우개를 자기의 필갈통(필통)에 집어넣고 선포했다.
정말 한심한 애다. 자기는 책가방까지 내 책상 앞에다 척척 놓다가 어쩌다 중간선을 넘어간 고무지우개를 가지려드니 말이다.

“그럼 너의 것이 넘어와도 내가 가지는 거다.”
“응, 그래”
“너 말하면 말한 대로 해야 한다. 약속을 어기면?”
“난 남자니깐 꼭 말하면 말한 대로 한다. 만약 내가 약속을 어기면 너를 누나라고 부를게.”
나는 속으로 웃었다.
(평소에 늘 자기 혼자의 책상인 것처럼 다 차지하고 쓰던 그가 갑자기 그 버릇을 뗄 수 있을까? 히히 버릇 좀 고쳐줘야지)
영호는 처음엔 중간선을 넘어올까 봐 많이 조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옛 버릇이 도지기 시작하였다.

“또르륵 또르륵”
연필이 굴러오고 고무지우개가 굴러오고….
나는 넘어오는 족족 필갑통에 주워 넣었다. 영호는 씩씩거리면서도 약속한바가 있어 머리만 뻑뻑 긁었다. 네 번째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연필 세대나 나에게 몰수당한 영호는 나를 보고 사정하였다.

“이젠 쓸 연필이 없구나. 한대만 빌려라 다 쓴 다음 다시 줄게.”
“안 돼! 누나라고 불러. 그러면 한대가 아니라 다 줄 테니까.”
영호는 성이 나서 주먹을 들었다가 자기가 한 다짐이 생간 나는지 주먹을 내리우고 나를 흘겨보고는 다른 아이들의 연필을 빌려 썼다. 나는 더없이 깨고소했다
(흥, 날 그렇게 애먹이더니 잘코사니야.)
그런데 깨고소한 마음이 오래가지 못했다. 글쎄 네 번째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 후 학용품을 정리하다가 부주의로 떨군 자동연필이 또르르 굴러 중간선을 넘어갈 줄이야.

“헤헤, 오늘 재수가 참 좋아. 꽁다리 연필 몇대로 값비싼 한국 자동연필과 바꿨으니…. 히히”
영호는 자동연필을 쥐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아까웠지만 별수가 없었다. 중간선을 넘어가면 가진다고 약속했고 또 나도 중간선을 넘어온 그의 연필이며 고무지우개를 가졌으니까.
나는 너무 아쉽고 애가타서 막 울고 싶었다. 한국 간 이모가 기념으로 사준 자동연필을 눈을 뻔히 뜨고 빼앗기게 되였으니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내가 애가 타는 것을 본 영호는 얄밉게 히죽히죽 웃으며 자동연필이 잘 써진다느니 질이 좋다느니 하면서 약을 올렸다.
점심시간이 돼 애들이 곽밥(도시락)을 먹느라고 야단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러는 나를 보고 영호는 마음이 좀 약해졌는지 더 약을 올려주지 않고 밥을 먹으며 나를 조심스레 건너다보곤 했다. 나는 생각할수록 아쉽고 슬펐다. 그래서 눈물이 막 나올 것 같아 책상에 마구 엎드렸다.

“너 우는 거니?”
영호가 조금 당황한 소리로 물어왔지만 나는 엎드린 채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 자동연필을 가져. 네가 우니깐 나도 마음이 별루다.”
영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 그를 콱 밀쳐버렸다.

“가라. 보기 싫다.”
오후시간이 되자 영호는 울적해 앉아있는 나의 눈치만 살폈다 마치 나에게 큰 죄를 짓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나는 자동연필 생각에 오후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몰랐다 마지막 시간이 끝나서 힘없이 학용품을 정리하는데 “또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연필이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내가 너무 기뻐 번개같이 주어들고 영호를 쳐다보니 영호가 뒤통수를 긁으며 히쭉히쭉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에서 영호의 마음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해쭉 웃으며 필갑통을 열고 그의 연필이며 고무지우개를 “또르륵 또르륵” 굴려 보냈다.
그 후부터 우리 둘의 책상엔 중간선이 없어지고 “또르륵 또르륵” 연필이 오가고 정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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