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3월호
특집/기획
화제
인물/역사
칼럼/문학
고국소식
재단소식
목록보기

칼럼·문학

 

동포문학

기억

중학생이 되자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자 머리를 쭉쭉 폈더니 한결 예뻐졌다. 하얗고 고르게 난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면 미스코리아 감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른쪽 뺨에 있는 흉터가 거슬린다. 이 흉터와 함께 잠시 나는 하얼빈에서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얼빈은 얼어붙은 쑹화 강 위에 얼음 조각전이 열리는 아주 추운 곳이다. 그런데 내게는 뜨거웠던 기억이 먼저 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 현장이 생생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 나는 정말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활동하기 좋아하고 끝없이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이웃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저녁 때 식당에서 가졌다. 어른들은 음식을 들면서 애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놀려고 들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같이 식당에서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밥을 다 먹었을 때 어른들은 아직도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놀려고 나갔다. 나도 놀고 싶어서 뛰어 나갔다. 그 순간, 주방에서 갓 끓여져 나온 국 냄비를 들고 오는 종업원과 부딪치고 말았다. 뜨거운 국물이 내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거기서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다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엄마께서는 나를 얼른 일으켜 안아, 식당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양 옆에 앉으신 아저씨와 아줌마가 내 얼굴에다가 생수를 마구 붓고 계셨다. 나는 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이 쏟아져 내려온 그 느낌이 정말 잊히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얼빈에서 유명한 화상병원에 도착했다. 의사가 상처를 소독하고 화상연고를 발랐다. 주사도 맞았다. 그 후로도 내 얼굴은 조금씩 부어오르고 짓물러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엾게 되었다. 한번은 의사가 내 얼굴에 가위를 대고, 잘못 떨어져 나온 내 피부를 마취도 하지 않고 잘라냈다. 석고 반죽 같은 화상연고를 더욱 두텁게 발랐다. 나를 지켜보고 계시던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나는 그 때의 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통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마다 나를 한 번씩 더 쳐다보았다. 한 아줌마가 나에게 와서는 뭐 먹고 싶은 게 없느냐고 하시면서 초콜릿을 주셨다. 마음은 정말 고마웠지만 얼굴이 너무 부어오르고 당겨 초콜릿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밤에 아빠가 오른쪽으로 돌리고 자지 못하게 베개를 여러 개 들고 오셔서 내 고개를 고정시켜 주셨다. 하룻밤이 정말 느리게 지나갔다.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질 않아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의 극진한 간호로 얼굴은 잘 회복이 되어 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한테 2년은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상처가 나은 후에도 햇빛을 받으면 상처 부위가 검어질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때 엄마 눈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은 어린 내 마음을 흠뻑 적셨다. 나도 모르게 나도 울고 있었다.


내 초등학교생활은 어둡고 슬프게 시작되었다. 교실 안이든 밖이든 모자를 꼭 쓰고 있어야 했다. 챙이 유난히 큰 모자가 항상 내 신체의 일부처럼 내 머리 위에 붙어 있어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체육 시간에 애들은 운동장으로 나가 놀았지만 난 밖은커녕 교실 안에 혼자 있어야 했다. 답답했다.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고 혼자서 그 쓸쓸함과 고단함을 느끼고 있어야 했다. 점점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시간이 제일 싫었다. 시간이 흐르며 얼굴은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고 모자도 벗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현지야, 너는 예쁘고 똑똑한 아이야! 밝고 당당하게 자라다오.’하고 말씀하셨다. 교통사고가 나서 얼굴을 화상 당하여 수십 번을 수술하고도 밝게 살아가는 이지선 언니의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아침 등교할 때마다 하시는 인사는 “오늘도 당당하고 씩씩하게!”였다. 나는 마음의 모자를 벗고 싶었다.


 얼마 전 우리학교에서 중국어 예술제가 열렸다. 친구들과 ‘개그 콘서트’에 나오는 ‘두분 토론’을 중국어로 패러디 한 연극을 하게 되었다. 중국어를 잘 하는 내게 일단 ‘여당당’역이 맡겨졌다. 그런데 주위의 친구들이 “현지야, 너하고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아무래도 배역을 바꿔야 할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도 좀 고민이 되었다. 집에 오니 엄마께서 아시고는 “현지야,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나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고 싶었다. 대사부터 완벽하게 외웠다. 인터넷으로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을 보면서 흉내 내 보았다.

 드디어 중국어 예술제다. 우리 팀이 할 차례다. 중고등부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있는 무대 앞에 섰다. 가슴이 막 떨렸다. 눈앞이 하얘졌다. 그러나 ‘현지야, 너는 할 수 있어. 파이팅!’엄마가 아침 등굣길에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용기를 내서 첫 대사를 꺼냈다. “뉘런 탕탕, 구어지아 푸치앙! 女人堂堂,國家富强!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그 순간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연기할 때마다 더욱 열띤 호응과 우레 같은 박수가 나왔다. 세상이 나를 지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고 세상이 내편인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 팀이 1등을 했다.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그 일 후로 내 마음에는 더 큰 기억, 유쾌한 기억이 생겼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웃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싱그럽게 웃는다. 나는 당당하다.

퀵메뉴
  • 목차보기
  • 퍼가기
  • 인쇄하기
  • 탑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