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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

 

현장의목소리

고려인 동포들과의 ‘일상적 교감’이 필요


카자흐스탄에서는 매년 5월이면 ‘평화통일 기원 한민족 축구대회’가 열린다. 올해로 5번째가 되는 이번 행사를 위해 얼마 전, 알마티의 모 한식당에서 한인단체장들이 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는 대회준비와 관련하여 많은 아이디어와 실무적인 얘기들이 오고 갔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바로 ‘고려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축구대회에서 업그레이드 시켜서 고려인들과 함께 하는 한민족 체육대회로 승화시키자”는 말에서부터 “행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자”는 지적, “기존의 한인체육대회와 중복되기 때문에 체육행사에서 벗어나 고려인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까지 초청하는 한류 콘서트 성격의 문화행사로 질적 발전을 이루어보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이렇게 한인단체장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그 의견 속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단어가 바로 ‘고려인’이었던 것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0만 5천명의 고려인 동포들과 약 1천500명이 조금 넘는 한인들이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로부터 강제이주를 당한 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자들이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카자흐민족을 구성하는 세 개의 부족에 이어 4번째 부족으로 꼽히기 까지 한다. 이러한 사실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언급하여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고려인협회’를 중심으로 저 멀리 지방까지 조직화가 잘 이루어져 있고 CIS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까레이스키 돔(코리안 하우스)’이라는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협회 사무실뿐만 아니라 고려일보사와 고려청년운동연합, 과학협회, 전통무용강습소 등이 함께 입주해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포함한 전체 CIS 지역 고려인협회를 사실상 지도하고 있기까지 하다.


사할린과 극동을 포함하는 러시아와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사는 인접국인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협회가 이렇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성공한 고려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고하신 이 블라지미르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오랜 벗이자 총무수석으로 있으면서 동포사회 발전과 한국기업의 현지진출에 숨은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직접 병원과 의사, 수술일정을 섭외해 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그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동포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카자흐스탄과 같은 구 사회주의국가들은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행정부처의 장관보다 최고 권력자의 지근거리에서 모든 공식 일정과 사생활 그리고 금고지기 노릇까지 하는 자의 힘이 센 법인데 그가 바로 이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막강한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 지혜를 겸비함으로써 카자흐스탄 내에서 고려인의 위상을 높이고 또 동포사회의 성장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최유리 상원의원.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의 발전에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잘 알려진 데로 복서출신으로서 그의 제자 세릭 꾸난바예프를 88 서울 올림픽에 출전시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만든 인물이다. 이후 사업가로 변신하여 카스피 그룹을 일구었고 또 고려인협회의 양적, 질적 발전을 이루어냈고 결국 상원의원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의 기업인들과도 막역한 관계를 유지, 한국기업의 현지진출을 도왔다.


현재의 고려인협회의 기초를 다졌을 뿐 아니라 기둥과 보까지 올려놓은 인물이 최유리 상원의원이라면 그 위에 지붕을 얹은 이는 김 로만 현 회장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 출신인 그는 40대에 고향 우슈토베를 포함하고 있는 까라딸 시장을 역임한 후 2007년 고려인협회장이 되었다. 이후 협회 운영을 조화롭게 한 그는 지난 1월 달에 치러진 카자흐스탄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현재 농업분야의 전문가로서 대통령과 정부의 신임을 단단히 받고 있다.


그 다음은 신 브로니슬라브 알마티고려문화중앙회장이 있다. ‘알마티엔지스트로이’사의 회장인 그는 사회진출 후 아스팔트 포장공사의 막일꾼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회장이 되기까지 오직 한 회사에서 한 길만 걸어온 골수 건설인이다. 그는 현재 알마티시 의원으로서 8년째 봉직하면서 시의 도로 등 인프라 구축과 각종 개발사업 분야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전문가가 없을 정도이다. 또한 신 회장은 우리의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모국어 재생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고려문화중앙 사업에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올해부턴 고려인협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협회의 살림살이까지 지원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고려인들 외에도 ‘카작무스’의 김 블라지미르 회장을 비롯한 많은 동포지도자들이 경제, 문화,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고려인들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익을 위해 정부나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현지 네크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가진 네트워크의 가치와 동포들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모국어를 상실한 고려인들과 언어소통의 문제가 놓여 있고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해나가기가 너무 힘들다”라던가 “고려인들이 한국적 마인드를 가지지 않는 한 그들은 그저 우리와 똑 같이 생긴 러시아인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혹자는 “고려인들의 네트워크보다 우리 회사가 구축한 라인이 더 나아!”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위의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려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태도가 아직도 동정의 대상이나 2등 국민으로 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단기적인 효과나 이익을 중요시하고 있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인’이란 존재의 원천이 인종적인 러시아인에 대한 동질감보다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라는 데 근거해 이를 확산을 목적으로 국제적 활동을 증대하는 데 주력하는 러시아의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도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려인을 생각해야 할 단계에 오지 않았나 싶다. 이는 개인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져야 할 것 같다.


요컨대, 한-카 수교 20주년을 맞은 올해부턴 이 땅 카자흐스탄에 발을 디딘 시기와 이유는 달라도 국적과 경제적 지위를 떠나 우리는 하나의 조상을 가진 형제라는 사실, 재 카자흐스탄 동포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과 일상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자. 무슨 일이 있을 때, 또는 누가 잘 되었을 때 찾아가는 것 보다 평소에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어야겠다. 그래야만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알 수 있고 또 그들도 저 멀리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국이 뭘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좁게는 카자흐스탄에 나와 있는 교민들과 고려인들이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넓게는 우리민족의 융성을 선도할 튼튼한 재외동포역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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