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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통신원

아들의 용돈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 귀가한 아들애가 엄마 용돈이라며 50불을 제 손에 불쑥 쥐어줬습니다. 작년에 대학을 마치고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아들애는 한국 나이로 쳐도 이제 겨우 스물두 살입니다. 그런 아들에게 벌써 용돈을 받았으니 정말이지 기특하고 뿌듯해서 남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반면, 고생스레 일한 걸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릿아릿 아프고 안쓰러웠습니다.


아들애는 실상 대학을 다닐 때부터 용돈은 자기가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그렇지 못 할 때는 지금 일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둥, 곧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둥하며 이런저런 변명과 이유를 대면서 부모에게 돈을 타 쓰는 일의 떳떳치 못함을 스스로 내비쳤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그 또래 청년은 물론이고 훨씬 어려서부터 자기가 쓸 돈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한다는 점에 비춘다면 특별한 이야깃거리도 아닙니다.


어쩌면 요즘 아들애는 주변의 친구들은 멀쩡하게 부모 집에 얹혀살기가 송구해 얼마간의 방값을 드리고 있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해 민망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구한 적도 없건만 곧 방세를 낼게요, 어쩌고 하면서 얼마 전에도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가 하면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할 때도 있고 이번 일은 한동안 안정되게 갈 것 같다며 안도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호주, 두 나라의 상이한 문화 속에서 부모 세대와 무단히도 갈등하며 성장한 이민 2세들이지만 그래도 호주 문화에 대견하게 적응한 것 중 하나로 ‘경제적 독립과 책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18세 무렵부터는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갑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부터 형성된 이러한 습관은 학비나 결혼 자금, 집장만 등, 목돈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게 하고,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을 느끼게 만듭니다.


가까운 지인이 최근에 아들을 장가보내면서 결혼 비용 마련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통에 되레 서운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안의 개혼이라 부모로서 이런저런 계획이 많았는데 당사자들 중심으로 결혼식을 올리다 보니 간소하고 단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의 재력이 맞선이나 연애의 조건이 되고 무리를 해서라도 사치스럽고 호사스런 결혼식을 올려야 체면이 서는 한국 사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 결혼뿐입니까. 시작은 이미 대입시를 향한 사교육부터였으니 자식 뒷바라지로 등골이 휘는 한국 부모들로서는 결혼은 자식에 대한 무한 책임이라는 지난한 과정의 한 매듭일 것입니다.


이따금 저는 한국의 또래들이 당연히 누리는 ‘부모 덕’에 대해 이곳 이민2세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호주 한인들 중에도 자식에게 무한대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주변의 질투나 시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드러내 놓고 자랑을 하거나 돈으로 거들먹거리는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호주의 우리 아이들도 행여 또래의 한국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보다 스스로 삶을 꾸리는 훈련이 보편화 되어 있는 이 나라 문화에 자부심을 느꼈으면 합니다. 지인 중에는 집안 형편이 넉넉함에도 고등학교 때부터 자녀들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다는 분도 계시지만, 제 속된 마음에도 ‘자식들 밑으로 큰 돈 들 일 없다’ 싶을 때 이민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드는 걸 보면 이 나라의 건전한 문화에 잘 적응해 준 우리 2세들이 참 고맙고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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