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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이 인생길이었습니다

지난 2월 7일부터 2월 9일까지 사할린 현장 5개 한인단체 단체장들의 한국방문이 있었다. 그간의 오랜 불신과 분열을 극복하고 1세들 중심에서 2세 중심의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되고 있는 사할린 한인동포사회.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한인문제 관련 5개 한인단체 단체장이 똘똘 뭉쳐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인 역사상 처음이라 한다.


신임 사할린주한인협회 임용군 회장을 비롯한 단체장들은 빡빡한 일정에도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회 정부 관련기관을 찾아 ‘사할린한인지원특별법 제정’을 호소했다. 법제화를 통해 사할린 현장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한인1세 및 그 후손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필요성 때문이다.


1월 4일~11일 KIN(지구촌동포연대) 관계자들이 눈으로 뒤덮인 사할린 오지 현장들을 찾아 남은 1세들을 만났을 때도 이들은 같은 목소리였다. 일본에 의해 70여 년 전 강제로 내몰리고, 물설고 낯선 수억만리 머나먼 소비에트사회에서 우리말글 배움의 기본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사할린 조선인들의 운명이란!


영하 28도로 떨어진 어느 날, 우리가 찾은 사할린의 체홉의 1세 할머니들의 한스런 표정이 생생하다. “자식들 다 버리고 영주귀국하면 무슨 소용인가” “사할린으로 끌려와 홀아비로 살다가 조선 땅에 남겨둔 사람들 그리다 독한 술 마시고 병 걸려 죽은 사람들….”


지난 해 설 전날 사할린을 방문했을 때도 1세 한인동포들은 같은 얘기를 꺼냈다. “같은 강제동원 피해잔데 한국 국적이 있으면 위로금 받고 여기 국적이면 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받고 싶어서 러시아국적 받았답니까? 그럼 왜 피해자 조사는 했답니까?”


사할린에 남은 한인동포들의 아픈 사연이 담긴 수백 통의 자필 편지를 가슴에 품고, 1년 전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사할린에 남은 3만5천 한인동포들은 지금도 “우리는 정녕 어느 나라의 백성이란 말입니까?”라며 울부짖는다.


 이들의 지난 세월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조국을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 사할린까지 강제로 끌려왔다. 그들로부터 모진 학대도 당했다. 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뿐, 이번에는 철의 장막, 소련에 억류되는 신세가 되었다. 조국은 광복되었지만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부모처자의 소식조차 알 수가 없다. 우리들은 끝내 이 얼어붙은 땅 사할린에 뼈를 묻지 않으면 안 되는가!” 20여 년 전 사할린주한인노인협회을 이끌었던 고 박해동씨는 많은 한인1세들이 이렇게 말하며 죽어갔다고 술회했다.

강제동원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 보면, 자작나무와 끝없이 펼쳐진 평화로운 바다, 겨울 설경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토록 ‘귀국선’을 기다리던 이들은 이제 망자(亡者)가 되어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자들’로 남았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사할린까지 직항로가 생겨 매일 비행기가 뜨고 3시간이면 남사할린 3만5천명의 한인동포들을 만날 수 있다. 한인1세들이 한스런 생을 마감하면서도 그토록 그리던 이곳 ‘고국’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이만한 호강도 없다고 해야 할는지.


고국으로의 대규모 영주귀국사업이 시작된 2000년 전후부터 2011년까지 약 4천여 명이 고국의 각 지역으로 영주 귀국했고 이 중 약 1천여 명이 고국에서 죽음을 맞이해, 현재 약 3천여 명의 사할린 한인동포들이 전국 21개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 45년 해방이후 4만3천여 명으로 추산되던 사할린 잔류 한인1세들은 모두 주검으로 남았고 이제 약 1천500명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제 90세 가까운 나이의 살아있는 한인 1세들, 향후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르면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더 이상 들을 수도 없겠다.


2011년 해방 이후에 최초로 한국정부 차원에서 해외 용역사업으로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묘지 한인묘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1천593명의 조선인 묘비를 찾아냈다. 남사할린에만 적어도 53개의 크고 작은 공동묘지가 있다하니 동토의 땅에 잠들어 있는 한인 망자(亡者)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겠다. 1년에 절반이 겨울인 사할린이다 보니, 돌과 나무로 된 수십 년 된 묘비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가능한 작업이고 시간을 다투는 문제다.


정부차원에서도 민간차원에서도 이 역사적 고통을 안고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할린 현지에 남은 한인 1세들에 대한 생활 지원, 부모를 따라 귀국을 원하는 2세들에 대한 정착지원, 사할린 현지 한인 추도시설(역사기념관 포함) 마련, 식민지시기 일본전범기업들이 강제 가입시킨 연금·보험금 받지 못한 체불임금 등을 확인해 돌려받기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 이게 사할린 특별법 내용의 핵심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8월 말, 65년 한일협정에서 의제화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 등에 대한 우리정부의 무대책을 강하게 추궁한 바 있고,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피해자 문제도 정확히 같은 문제인 만큼 범정부차원의 특단의 대책마련을 주문하고 싶다.


“고향 가는 길이 인생길이었습니다”라는 이 슬프고도 오랜 절규에 한국의 시민사회도 700만 해외동포사회도 더 이상 방치 말고, 올해부터라도 전 국민 모금이나 범민족적인 구체행동으로 촉발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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