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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학

 

동포문학

내가 사는 나라, 살아갈 나라

나는 일본의 도쿄에 살고 있다. 유치원에 다닐 때 까지는 한국말을 배울 기회가 잘 없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국학교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곳 도쿄에서도 한국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방학,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갔다. 내가 3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 계신다.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먹기 싫은 것도 자꾸 먹으라고 하시지만, 나는 할머니가 좋고, 할머니가 계신 우리나라가 좋다.


즐거운 방학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우리가 도쿄로 돌아가던 날, 할머니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며, 애써 눈물을 감추셨다. 다시 혼자 사시게 될 할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났지만, 할머니처럼 감추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왜 우리나라에서 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일본의 도쿄에서 태어났다.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내 고향은 일본의 도쿄이고, 그냥 고향에서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도쿄로 유학해서 공부를 하던 아빠는, 졸업 후에 도쿄에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던 엄마도 아빠와 결혼해서 도쿄로 왔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도쿄에서 살게 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에, 언젠가 내가 자라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때가 되면 계속 일본에서 살 지,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살 지, 아니면 또 다른 나라에서 살 지, 내 스스로 결정하라고 한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살기로 했을 때 힘들지 않았어요?”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를 믿으니까….”
그렇다면….아빠에게 똑같이 물어 보았다. 아빠는 그냥 웃으며, “믿는 데가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궁금했다. 고향을 떠나 아빠가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힘, 아빠가 믿는 데는 어디일까?

지난봄의 일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근처 학원에 갔는데, 갑자기 ‘쿵’ 하고 건물이 흔들리며 물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단 책상 밑에 숨었다. 그런데, 보통 때와는 달랐다. 몇 초만 무서움을 견디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끝나던 지진이, 몇 분씩이나 계속되는 듯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모두들 빨리 건물 밖으로 대피하자고 하셨다. 거리에는 건물에서 빠져나온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또 땅이 흔들렸다. 옆 건물 벽에서는 타일이 떨어졌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머리를 감쌌다. 눈물이 나왔다. 모두들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책에서 나는 것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사이렌 소리가 다가오고, 평화롭던 내 고향 도쿄는 그 날 갑자기 변해버렸다.


지진은 계속되었고 시커먼 바닷물이 넘쳐 사람들이 쓸려가고, 불이 났다고 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에서는 병을 일으키는 방사능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다고 했다.


뒤척이다가 이제 겨우 잠이 든 듯 했는데, 엄마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밤새 바람 방향이 바뀌어 내가 살고 있는 도쿄까지 방사능 물질이 날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도쿄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쫓겨나듯 집 밖으로 나갔다. 어두컴컴한 하늘과 희미한 가로등. 차갑고 시큼한 새벽바람에 코끝이 찡했졌다. 엄마는 우리에게 마스크를 나누어 주었다.


고생 끝에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슬픔이 밀려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살았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잠이 밀려왔다.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생각났다.


도쿄로 다시 돌아오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화려한 불빛이 밝고 아름답던 도쿄의 저녁은 놀라울 정도로 어둡게 변해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들을 불러놓고 이제 곧 도쿄를 떠나서 이사를 할 거라고 말했다. 나도 동생도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는 소리를 질렀다. 계속 눈물이 나왔다.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잘 몰랐다. 그냥 학교와 친구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들의 반응에 놀랐는지 엄마와 아빠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시 결정하자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났고, 더 큰 일은 터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도쿄에 살고 있다. 아빠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살기로 했을 때 힘들지 않았어요?”
아빠는 여전히 웃으며 말한다.
“믿는 데가 있으니까…. ”


내가 커서 어디에서 살아갈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어디에서 살아가든지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힘이 들 때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할머니의 나라, 우리나라가 있으니…. 그렇게 믿는 데가 있으니…. 무언가 든든한 것을 숨기고 있는 듯 한 아빠의 마음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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